시월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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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피부에 닿는 바람결이 곱다.

사람마다 사물에, 혹은 음식에 대한 기호가 제각각이듯 날씨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일 년 내내 요즘 같은 날씨면 좋겠다. 좀 갑갑하다 싶으면 문 열면 되고, 아니면 문만 닫으면 되는 그런 날씨. 난방 걱정도, 냉방 걱정도 없고 습도도 딱 좋은 데다 미세먼지니, 황사니 하는 어지러운 걱정까지 제거된 그런 날씨. 절기가 어찌나 정직한지, 얼마 전만 해도 햇살이 강하여 손차양하며 그늘진 곳을 골라 걸었는데 말이다.

활동하기 좋은 절기라 그럴까. 시월은 요소요소에서 많은 행사가 이루어졌다. 월초만 해도 제주의 가장 큰 축제인 탐라문화제가 산지천 광장과 그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시기적으로 연휴가 이어져 있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던 것이라 기억한다. 한라문화제란 이름이 개명되기 전부터 동원이긴 했으나 참여했던 기억도 있어 축제장으로 나가보았다.

그 곳을 찾던 날은 비가 오다 개다 반복하며 분위기가 눅눅했었는데 이튿날은 날씨가 쨍하게 맑았다. 곳곳이 왁자해 어제 나서지 못한 발걸음까지 보태졌는지 축제는 활기로 출렁했다. 축제장 이곳저곳마다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었다.

한 광장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준비한 곡을 반주에 맞춰 공연하고 있었다. 잠시 지나며 보려고만 했는데 웬걸, 분위기에 취했다. 어느새 관중석에 자리 잡고 앉아 리듬에 맞춰 손뼉을 치고, 발로 박자를 맞추느라 까딱거리고, 입으로는 익숙한 음에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분위기에 흠뻑 취한 내 모습이 살짝 멋쩍어 옆 사람을 살폈다. 옆 사람도, 또 그 옆 사람도 모두 공연에 취해 별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화음이 멋지고, 노래가 좋고, 젊음이 부러웠다.

예술이나 문화가 건네는 얼굴이 이런 게 아닌가 한다. 오감을 통하여 그 하나를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감성이 자극되어 거기에 젖어 들며 호흡을 같이 맞추는 것 말이다. 장르와 성향에 따른 차이야 있겠지만 거기서 맛보는 감동은 덤이다.

‘제주의 할망’이라는 큰 주제 속에 치러진 이번 탐라문화제는 제주 신화 속 여성 신인 할망들을 불러들여 그 할마님들께 제주의 미래 발전을 위해 굽어 살펴 주십사하는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는 ‘할마님 잘 쿰어줍서’를 소개하고 있었다. ‘쿰어줍서’라는 말을 오랜만에 들어 어색했지만, 어릴 적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쓰던 말이라 급 반가웠다.

축제장 먹거리 장터를 지날 때였다. 행사나 축제 때마다 먹거리에 대한 민원이 컸음을 염두에 둔 걸까. 가격표 붙여진 아래로 거기서 만난 사람들인지, 같이 온 일행들인지 삼삼오오 모여 앉은 모습이 사뭇 화기애애하다. 마주 걷는 이들은 가까운 가족끼리 나온 듯 꼬마 두엇이 제 얼굴보다 큰 파랑과 분홍색 솜사탕을 들고 한 입 먹으려 하늘 향한 모습이 솜사탕처럼 달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하향곡선을 긋고 있다.

오늘 ‘시월의 어느 멋진 날’도 좋고 ‘시월의 마지막 밤’도 좋겠다. 감미로운 선율에 시월의 끝을 실어봐야겠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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