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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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높이가 다른 곳으로 걸어서 움직일 때 밟고 오를 수 있도록 턱을 지어놓은 게 계단이다. 내 생애의 첫 계단 체험은 부산 용두산 공원으로 오르는 ‘40계단 층층대’이다.

6‧25전쟁으로 피난 왔다 웬 사연인지 그 계단에 ‘앉아 우는 나그네’ 그 계단이다. 부산 살던 외사촌동생을 만나 시내를 구경하던 길이었다. 그때 유행가로 몇 번 들었던 이름이지만 섬 밖 세상이라곤 처음이던 내게 그 계단은 유별나고 정겨웠다.

첫 발을 내딛으며 친구 얼굴이라도 대하듯 위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아득했다. 도시에서 자란 사촌이 두 걸음에 나는 한 걸음을 떼며 간신히 뒤를 따라 올랐다. 세며 오르자고 작정한 게 중간에서 수를 놓쳤다. 어느 지점에서 셈이 흐트러진 것이다. 숨차게 가팔랐다. 계단의 허리 쯤을 지나는데 다리가 떨리면서 가벼운 현기증이 일았고, 다 올라 내려다보니 눈 앞이 어지러웠다.

휙휙 눈감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 때 스물 한 살, 나는 촌놈이라 순진했다. 그 40계단은 그런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60년 전, 한 컷. 현란한 색 이전 흑백의 빛으로….

그 후, 계단이 지천인 세상이 됐다. 길, 산, 아파트, 계곡…. 높은 곳, 가파른 곳이면 어디든 쉽고 편히 오르게 계단을 놓여있디. 산 문으로 오르는 길엔 백팔번뇌를 상징해 108계단을 놓기도 한다. 자신을 시험하려는 듯 이를 악물고 오른다.

생각과 달리, 계단은 오르는 것보다 내릴 때가 힘들다. 뼈와 관절에 큰 부하(負荷)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무릎과 관절에 주는 부담이 크다. 터덜터덜 걷듯이 무릎에 강한 충격을 주면서 계단을 내려오는 것은 무릎 관절을 망가뜨리는 행동으로 삼가야 한다. 팔팔한 시절 젊음이 한창일 때엔, 한 번에 두, 셋씩 바람처럼 오르내리기도 한다. 한꺼번에 그럴 수만 있다면 훨씬 덜 지친다. 한 계단씩 오르내릴 때보다 동작이 반으로 줄어드니 당연한 것이다.

일정 높이 구간마다 중간지대로 보통 계단보다 너비가 더 넓은 계단이 있다. 이른바 ‘계단참’. 서거나 앉아 쉴 수 있어 지치거나 체력이 약한 사람들이 계단을 오를 때 잠시 쉴 수 있게 편평하게 낸 공간이다. 60㎏인 사람이 계단 오르기를 1시간 하면 440㎉를 태울 수 있다 한다. 특히 공복으로 유산소운동을 해주면, 에너지를 소비할 때 탄수화물에서 지방이 사용되는 시점이 조금씩 빨라지므로 체지방이 감소되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디.

인생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다. 끝엔 좋은 말씀, 맑은 미소가 기다리는가. 목표를 향해 쭉 뻗은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폭이 좁아 딛기 군색한 계단, 넓고 넉넉한 계단을 오르는가 하면,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는 계단도 있다.

내 앞에도 수많은 계단이 놓였었다. 평생 마흔네 해를 교직의 계단을 올랐다. 한때 계단을 이탈하는 갈등과 고뇌의 한때가 있었지만, 추슬러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내 인생을 완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통렬한 자기관리, 자기성찰의 결과였다고 회상한다.

적잖게 걸어 올랐다. 이젠 여생을 내가 올랐던 계단들을 회상 속에 뒤적이며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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