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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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11월, 벽에 걸린 달력이 낙엽 같은 감상을 불러오는가.

한 해가 기우는 길목에 서면 우수에 젖게 된다.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무탈하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나가는 시절은 애틋하다. 빈손의 허무를 느끼며, 색 바랜 잎 떨구고 겨울을 대비하는 나무를 무심히 바라본다.

행복은 다른 목적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추구의 대상이다. 욕구나 욕망의 충족에서 나타나는 만족감이나 즐거움 같은 게 행복의 줄기일 테다. 가끔 나 자신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그래, 이만하면 행복한 것 아니냐고 대답한다.

지인들의 부고를 접할 때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된다. 하루하루가 행운의 보석이리. 건강의 근력은 삶의 근력이다. 시한부 인생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건강을 되찾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매체에서 자주 접한다. 위암 말기 환자가 위를 전부 절제 받고도 힘든 나날을 지나 이제는 매일 4시간씩 맨발로 산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나에게 죽비로 다가왔다.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정신 차려야겠다.

아침저녁 동네 걷기는 중요한 나의 일상이다. 홀로 여유롭게 걸을 때면 침묵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생명체의 애환이 떠오르는가 하면 광막한 우주의 나그네로 고독 속에 잠기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지나다 영혼의 구원을 빌기도 한다.

얼마 전에 한 단체 회원들과 2박 3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소금산 밸리, 죽변 스카이레일, 해신당공원, 대금굴, 발왕산 등을 지나며 추억을 쌓았다. 시간의 손재주는 늙을수록 빛이 나는가, 배경음처럼 맑은 물소리와 함께 드러내는 대금굴의 종유석과 석순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못지않게 발왕산 기슭의 천년주목숲길도 황홀하게 만들었다. 1m쯤 높이의 덱길이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주변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주목들이 관광객을 맞았다. 아름드리 몸체가 아직도 청춘처럼 늠름한가 하면 어떤 주목은 풍파에 내부를 거의 파주고도 짙푸른 잎을 통해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 있었다.

물이 낮은 곳으로 스미듯 풍광 좋은 곳엔 사람들이 찾아들게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자연을 보전하며 사람도 즐길 수 있을까. 관광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으로 3.7㎞를 이동하면서 편의시설의 유용성을 실감했다. 자연 훼손을 줄이고 경제도 활성화하는 선택이면 좋겠다 싶었다. 순간 자연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으로부터 빌려 쓰는 것이란 인디언의 지혜가 나를 머쓱하게 했다.

싸늘한 바람결에 실려 오는가.

어디서 읽었던 내용이 아슴푸레하다. 한 제자가 선승에게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 선승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그게 어디냐고 다시 물었을 때 추울 때는 더 춥게 하고 더울 때는 더 덥게 하는 곳이라 한다. 인생의 문제는 수용하고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다 함인가.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치료된다는 말씀인가. 바닥까지 고통을 겪어내지 않은 문제는 다시 찾아온다기에, 지금을 누리면서 낯선 곳으로 향할 밖엔.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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