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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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어머니 장례를 치렀는데 경황이 없어서 연락을 못 드렸어요.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허망하고 자식된 도리를 못 한 거 같아 가슴이 빈 것처럼 쓸쓸하네요. 가시는 길에 넋이라도 달래주자 이야기가 나왔지만 쓸데없는 미신이라 반대하는 언니네 식구들 때문에 없던 일로 마무리가 됐어요.

아니다 싶었지만 출가외인이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기도 놓쳤다보니 억지로 잊고 있었는데 집 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네요. 경운기를 타고 가다가 넘어져 허리를 다쳐 고생을 하고 있지 않나, 술 먹고 싸움질을 해서 동네 망신을 당하지 않나, 무엇보다 과수원 토질이 변해 내년 농사가 걱정이라네요. 멀쩡했던 나무가 힘이 없어 가지가 쳐지고 지저분한 냄새까지 난다네요.

상황이 이런데 정신을 못 차리고 유산 몇 푼 놓고 형제간의 다툼을 하고 있어요. 겨우 한 타협안이 ‘부모님 제사를 모시는 쪽에서 더 많이 가져가자’ 했는데도 싫다고 버티고, ‘다른 대안을 내놔라’ 해도 요지부동 고집을 피우는 중입니다. 저야 받을 만큼 받아서 할 말은 없지만… 하여간 문제가 좀 복잡하네요.”

망자 대신에 온 영혼은 아버지란다. 이런 대접이라면 오지 않겠다는 뜻이다. 살아생전에는 남편의 전처 아이들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했고 손에 물 마를 날도 없었지만 정해진 운명이니 누가 알까 싶어 눈물도 참아왔던 세월인데 억울하고 분하다는 답 없는 메아리다.

차분히 술 한 잔을 놓고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죽어서까지 해야 할 숙제가 자식 걱정인데 본인 잘못이란다. 남에게 감춰야 할 거짓과 슬픔도 많았지만 가족을 위한 일이라 부끄럽지 않았고 까르르 웃음소리에 피곤한 몸도 위로받을 수 있었건만 초라함을 넘는 안타까움이다.

돌이켜 보면 업보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오며 그릇된 행동을 지켜봐야 하는 애비의 심정은 마치 도둑질하다 걸린 철부지 어릴 적 모습이란다. 그만하시라 말로 해도 기어코 회초리를 들겠단다. 부인의 희생이 아까워서 나오는 못된 마음이다. 부질없는 미움을 접어 두시라 사정을 해도 점잖게 대응하면서 조목조목 이유를 대셨다. 키워 주고 보살펴준 은혜를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혼을 내서라도 고쳐야 되지 않겠냐 하시니 틀리지 않는 지적이다.

손주들은 무슨 죄냐 하니 멈칫하신다. 어떤 식이라도 지금의 감정을 표현하시라, 나머지는 그들 몫이다 하고 나쁘지 않은 헤어짐을 가졌다

다음 날 간밤 꿈에 역정을 내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생생하다는 따님의 연락은 차라리 다행이다.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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