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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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무슨 일을 다짜고짜로 하는 것, 헤아리지 않고 마구 하는 것을 ‘무턱대고’라 한다. 무작정 한다는 것이니, 그래선 일의 성패는 정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젊은 시절에 앞만 보고 달려들던 생각이 난다.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서둘러 덤벙거리는 모습이 불안해 처음부터 믿음이 가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50대에 문학상 하나를 받은 길사에 친지에게서 축하 화분 하나를 받았다. 축복의 메시지, ‘행복이 날아든다’는 호접란이었다. 마흔 송이가 활짝 만개해 왁자지껄했었다. 호접란은 나와는 처음 겪는 서먹한 사이였다. 거실 창가에 두었더니, 흰나비들이 떼지어 날갯짓하는 바람에 그 해 가을 한 철, 눈이 마냥 호사했다.

헌데 그렇게 현란하던 난 꽃들이 시절을 접더니, 잎들이 축 늘어지는 게 아닌가. 내 딴에는 꽃이 지면 잎도 지려니 했다. 그도 그럴 게 영락없이 빛깔이 사색(死色)이었다. 식물은 아파도 한마디 말은커녕 어떤 짓으로도 그 아픔을 표현하지 못한다. 말 못 하는 동물이라도 신음하며 괴로워할 것인데, 식물은 그냥 소리 없이 시간 따라 죽음이 진행될 뿐이다. 살아서 제 삷을 견뎌내듯 죽음 앞에서도 인내하며 명을 놓는다.

눈부셨던 꽃, 처음 겪는 꽃이라 호접란의 죽음은 여간 애석한 게 아니었다. 식물을 좋아하면서 화분의 꽃 하나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낯없었다. 허탈한 눈으로 폐 화분을 바라보다가 아차 했다. 화분이 잔뜩 물을 머금고 있잖은가. 순간 흠칫해 정신이 확 들었다. 난을 죽인 것은 바로 나였지 않은가. ‘물을 너무 많이 주었던 게로구나.’ 식물마다 다를 것인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식물은 물을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에 무턱대고 물을 준 것이다. 호접란을 받아 거실에 놓으면서, 그래 그래야지, 어느 옛 선비가 한 말을 떠올렸고 그대로 실천했던 게 아닌가. 머릿 속에 박힌 말, “매화에 물을 주어라.”

등단 30년을 회고하며 낸 책 《여든 두 번째 계단에 서다》를 받았다며, 사회복지협의회 고승화 회장으로부터 축화 분을 받았다. 우연찮게도 호접란이 아닌가. 연전에 놓쳐 버렸던 그 난 분, 기억이 되살아나 낯이 화끈했다.

호접란! 흰나비들이 무리 지어 내려왔지 않은가. 눈이 부시다. 마음자리로 일렁여 오는 생각의 실마리, ‘아, 이건 무슨 연이다. 이번에야말로 살려내야지.’

검색창을 열어 꼼꼼히 메모를 했다, ‘원산지가 열대 밀림 지역. 따뜻한 온도에서 잘 자란다. 흙이 말랐을 때 물을 흠뻑 준다. 과습에 취약하므로 꽃잎에 물이 닿지 않게 해야 한다. 밝은 곳, 그러니까 채광이 좋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둔다. 음지에 두면 꽃잎이 금방 떨어져 버린다. 최적 온도 17~30도. 한 달 한 번 주기적으로 액체 영양분을 주면 꽃을 오랫동안 볼 수 있다….’

흙을 살펴 말랐을 때 물을 충분히 주면 되고, 더욱이 꽃잎에 물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에 이르러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새 나이를 더 먹었으니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무턱대고 마구잡이로 다짜고짜 해선 될 일도 안되는 게 정한 이치다.

새잎 셋이 나왔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자. ‘행복이여, 날아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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