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스토리를 문화자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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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인들, 지역 인사들과 교류.교육 활동으로 지대한 공헌 남겨

넓게 보면 추사 김정희 선생도 제주인...자긍심 가져야
양진건 제주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제주도 근로자종합복지관 중회의실에서 열린 제주인아카데미 여섯 번째 강좌에서 제주 유배문화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양진건 제주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제주도 근로자종합복지관 중회의실에서 열린 제주인아카데미 여섯 번째 강좌에서 제주 유배문화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양진건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 10일 제주특별자치도 근로자종합복지관 중회의실에서 제주일보 주최로 열린 ‘제주人 아카데미’ 여섯 번째 강좌에서 ‘제주도의 또 다른 이야기-제주 유배문화’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양 명예교수는 제주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제주과 유배인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고, 유배문화를 활용한 관광 사업도 제안했다.

▲제주인이란

제주도는 고려시대부터 유배지로 이용됐다. 전국에서 유배인이 가장 많았는데 조선시대에만 400명이 넘는 유배인들이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보냈다. 제주에 온 유배인들은 지역 인사들과 교류하고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양 명예교수는 강단에 오르자마자 청중들에게 ‘제주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양 명예교수는 제주인의 범주를 넓히면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생활하는 사람’, ‘제주에서 태어나 타 지역(외국)에 거주하는 사람’, ‘타 지역에서 태어나 제주에 정착한 사람’, ‘제주에 잠시 거주했던 사람’, ‘제주와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누구보다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 모두 제주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명예교수는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과거 제주인의 정의를 넓히면 100만이 넘는다고 했다”며 “이렇게 볼 경우 제주에서 8년3개월 유배 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 선생과 여자 유배인으로 대정에서 38년 산 정난주 마리아도 제주인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양 명예교수는 제주에서 잠시 생활했더라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을 제주인으로 받아준다면 유배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제주인’들의 조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부연했다.

▲제주로 유배를 보낸 이유

양 명예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 유배 등급은 한양 기준으로 2000리, 2500리, 3000리가 있었다. 3000리형이 있지만 조선에선 한양에서 3000리가 되는 지역이 없었다. 물론 제주도 직선거리로 3000리가 안 된다. 이를 지키기 위해 유배 보내는 과정에서 ‘곡행(曲行·꼬불꼬불 돌아서 감)’이 있었다고 한다.

유배인이 제주에 도착하면 고을 수령은 유배인 관리를 담당할 보수주인(保授主人)을 지정했다. 위리안치(圍籬安置·집 둘레에 가시울타리를 둘러치는 거주지 제한)가 아닌 경우 법적으로 가족을 동반해 유배지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허용됐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 동반 사례는 많지 않았다.

양 명예교수는 다도해 등 남해에 있는 수많은 섬 가운데 제주가 유배지로 많이 선택된 이유는 거리 외에도 관청이 있고, 의식주 여건이 나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 명예교수는 “중죄인이 제주로 배치된 이유는 단순히 거리가 멀어서만이 아니다. 유배인을 관리해야 할 관청이 있고, 그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점에 있어서도 제주가 다른 섬에 비해 여유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배인, 제대로 알아야

양 명예교수는 “제주에 배정된 유배인들은 가족을 동반할 수 없었고, 유배 기한도 정해지지 않았기에 극한의 외로운 환경에 놓였다. 대부분 유배인들은 제주 여인과 가정을 일궜다”고 말했다.

제주 여인들이 본처가 있고,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유배인과 가정을 이룬 사정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석을 내놓았다.

양 명예교수는 “제주 여인들은 유배인들이 죄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쟁 때문에 유배를 온 사람들이 오늘은 죄인이지만 내일이면 죄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간파한 제주 여인들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유배인을 배우자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것이다.

양 명예교수는 “제주 여인은 함께 산 남자가 유배에서 풀려 가버려도 그가 주고 간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자식을 키우며 훌륭한 집안을 일궜다”며 “선택한 남자가 해배(解配)되면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다는 점을 잘 알았다는 점에서 제주 여인들은 현명했다”고 설명했다.

양진건 제주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제주도 근로자종합복지관 중회의실에서 열린 제주인아카데미 여섯 번째 강좌에서 제주 유배문화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지식인 DNA가 흐르는 제주인

양 명예교수는 “제주인들에게는 유배인들의 DNA가 흐르고 있다.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 명예교수는 “조선시대 조정에서 할 말 않고 가만히 숨 죽이고 있으면 출세하지 유배를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의 귀에 거슬리더라도 목숨을 내놓고 옳은 소리를 했던 분들이 유배를 왔다. 동계 정온은 영창대군이 죽자, 어찌 동생을 죽이느냐고 항의했다가 유배를 당했다”고 했다.

양 명예교수는 이어 “장두 이재수는 기묘사화와 연루돼 제주에 귀양 온 이세번의 후손이다. 장두가 되면 99.99%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기꺼이 나섰다”며 “제주에 온 유배인과 그들의 후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섰다. 조상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유배문화 어떻게 해야 하나

“세계적으로 유배문화가 남아있는 섬들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양 명예교수는 “미국에서 유배와 관련 있는 10곳을 이색 관광지로 추천했는데 9곳이 서양에 있는 섬이고 동양에는 일본 사도섬이 유일하게 포함됐다”고 말했다.

양 명예교수는 “사도섬은 일왕들이 유배됐던 섬이다. 유배문화와 관련된 공연을 하는 극단만 15개가 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호주에 있는 조상 찾기 관광이 유행이다. 과거 죄인들이 집단 생활했던 거주지를 비롯해 이들의 기록을 꼼꼼하게 남겨놓아 유배관광지 1호로 꼽힌다”고 말했다. 이어 “넬슨 만델라가 20여 년 간 유배생활을 보낸 남아프리카공화국 로벤섬도 세계에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의 순례지 1호로 자리잡았다”며 “제주도도 유배문화를 활용한 관광객 유치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명예교수는 “전주에 가면 모주(母酒)가 유명하다. 제주로 유배 온 인목대비의 어머니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팔았다는 모주가 다른 지역에 빼앗겼다고 볼 수 있다. 유배문화와 관련된 스토리를 발굴해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했다.

양 명예교수는 “과거 강기권 남제주군수에게 유배인 기념관을 세우자고 제안, 건축 설계를 마치고 보고서까지 나왔는데 행정체제 개편으로 남제주군이 없어졌다. 해당 프로젝트가 서귀포시에서 이어질 줄 알았는데 결국 없던 일이 돼버렸다”며 “전임 행정가가 하던 일이 임기 후 중단되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김문기 기자>

<제주특별자치도·제주일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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