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雪)의 순수와 검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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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는 혼자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 …/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을 것이다’

시인들의 시인이라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펄펄 내리는 눈을 안주 삼아 술 먹는 것도 좋다. 옆에는 나타샤도 있고, 하얀 당나귀도 있다.

그들과 함께 산골의 오두막집에서 오순도순 사는 것도 괜찮다.

과거 백석의 연인으로 알려진 요정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은 1000억원대의 대원각을 불교에 시주했다. 대원각이 1997년 사찰 길상사가 된 연유다. 

김영한은 대원각을 시주하면서 “그까짓 1000억원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했고, “내가 죽거든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유골을 길상사에 뿌려 달라”고 했다. 

▲‘눈’하면 또 생각나는 시가 있다. 김광균의 설야(雪夜)다.

그는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며 눈 내리는 소리를 여인의 옷 벗는 소리와 동일시했다. 이처럼 눈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뭔가가 있다.

눈을 처음 본 강아지가 온 세상이 신기한 듯 눈밭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순수(純粹)같은 게 말이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눈을 노래하며 위안을 삼았던 게다. 

▲기상청은 올겨울엔 예년보다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이 11월과 12월에 전성기를 맞아 우리나라로 수증기가 활발하게 유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눈이 많이 내리면 눈 무게로 비닐하우스 등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러한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기상청은 올겨울부터 처음으로 ‘눈 무게’를 예보한다.

‘가벼운 눈’, ‘평균적 눈’, ‘무거운 눈’으로 구분해 예보한다는 것이다. ‘무거운 눈’이 예보되면 비닐하우스 등에 쌓인 눈을 중간 중간에 털어낼 필요가 있다.

순수와 낭만의 상징인 눈이 재난의 기준으로 세분화되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올겨울엔 가벼운 눈이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세상의 적폐를 잠재우는 순수가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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