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盲目)과 육하(六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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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국내 여러 대학생이 참여한 아이디어 경진대회 심사에 참여했다. 동량(棟樑)이라는 옛말을 새삼 새겨볼 정도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았다. 시청각 발표 자료는 하나 같이 좋았고, 3D프린터로 제작해온 시제품도 훌륭했다.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해서 성실하고 알차게 답변하는 태도도 좋았다. 으레 그렇듯이, 이렇게 좋았던 시간의 끝은 최우수작을 선발해야 하는 현실적인 부담으로 다가왔다.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뜨거웠던 날들을 생각하면 허투루 순위를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수준이 엇비슷하면 심사위원의 걱정이 더 깊어진다.

“도전적이지만 종합적인 사고가 아쉬웠어요.” 발표자들이 나간 뒤 심사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일어서면서 심사위원 한 분이 던진 말씀이 파문을 일으켰다. “아쉽다”는 말에 순간 일렁인 물결은, 그러나 빠듯한 일정 때문에 총평 시간을 가지지 못해 불안했던 심사위원 사이에서 이내 공감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재회를 기약하는 인사와 함께 짧은 소회를 나누면서 “맹목(盲目)은 청춘의 특권이기도 하니까요.”라는 농담이 이어졌다.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을 부러워하면서, ‘이것저것을 헤아리는 눈’을 얻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말이기도 했다.

발표 대부분은 아이디어 배경, 내용, 그리고 기대효과 순서로 이루어졌다. 아이디어 배경으로는 현황 및 자료 분석이나 개념의 사전적 정의, 역사적 고찰 등이 제법 성실하게 제시됐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내용과 기대효과까지 일관되게 유지하는 아이디어가 많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가치나 당위를 강조하는 아이디어일수록 더 도드라진다. ‘왜(Why)’를 묻는 대신 가치나 당위를 내세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라는 질문이 연쇄적으로 사라진다.

맹목은 ‘이성을 잃어 적절한 분별이나 판단을 못하는 일’을 뜻한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맹목에서 비롯된다. 한나 아렌트의 말에 따르면, 악을 행하게 되는 계기가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신념에만 빠져 있는 맹목은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으로, 그리고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맹목에서 벗어나려면 육하(六何), 곧 여섯 개의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학가에 불고 있는 현안 문제인 대학구조조정은 스무 해라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학구조조정의 ‘왜(Why)’로는 ‘학령인구감소’라는 교육환경 변화가 제일 먼저 손꼽힌다. 그리고 어김없이 ‘교육정책당국(Who)에 의해 지금(When), 국공립대학에서부터(Where), 인위적인 입학정원감축 및 통폐합을(What) 재정지원 사업(How)으로 달성해야 한다’는 맹목이 판을 친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하지만 청춘을 길러내는 대학이라면 ‘왜’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 본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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