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의 색다른 제주여행] 돌담 안은 불타버린 초가집과 마당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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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한때 사랑·행복이 넘치던 낙원
군홧발 폭력으로 모두 빼앗겨

4·3으로 주민 30여 명 희생
67가구의 집들은 잿더미로

30년 전 개봉했던 〈미션〉이란 영화가 있다. 극장에도 종종 재개봉되고 연말연시나 연휴 때 안방극장 TV에도 자주 등장한다. ‘선교’라는 제목이 종교적 색채를 풍기긴 하지만, 종교와 무관하게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명작이었다.  


18세기 중엽의 유럽 선교사와 남미 원주민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중남미 대륙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두 강대국의 땅따먹기 각축장이던 시대가 영화의 배경이다. 에스파냐 선교사 세 명이 선교를 위해 이과수폭포 위 오지로 들어갔고, 거기서 과라니족 원주민들을 만나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들이 사는 밀림 속 공동체 촌락은 선교사와 원주민들 모두에게 사랑과 행복이 넘쳐나는 낙원이었다. 


어느 날, 그 일대가 포르투갈 영토로 바뀌었으니 촌락을 비우고 떠나라는 통보가 내려진다. 과라니족에겐 조상 대대로 뼈를 묻어온 삶의 터전인데 침입자들이 들어와 땅 주인이 바뀌었다고 나가라는 것이다. 살던 집을 비울 수도, 고향 땅을 떠날 수도 없고 달리 갈 곳도 없다. 영화 종반부, 일부 강경파들은 활과 칼로 무장해 싸우고 온건파들은 평화적 시위 방법을 택하지만, 그들 모두 포르투갈 군의 막강한 총포 앞에서 반나절 만에 몰살당한다. 집들은 불태워지고 마을은 잿더미로 변한다. 그리고 얼마 후, 살아남은 과라니족 아이들 몇몇이 폐허를 둘러보다가 어디론가 조각배를 몰아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마지막 장면 떠나는 아이들 뒤로 올라오는 엔딩 자막 두 줄이 여운을 남긴다. ‘어둠 속에 한줄기 빛이 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 영화 〈미션〉속 과라니족의 마을은 이후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올레 18코스는 제주시 원도심과 함께하는 코스다. 지금이야 경제와 관광의 모든 주도권을 위쪽 신제주로 빼앗기며 쇠락하고 있지만 그래도 제주의 중심은 엄연히 이곳 구제주 원도심이다. 올레길을 걷고 있는 외지인 여행자라면 올레 코스와 관계없이 반나절이나 하루쯤은 원도심에 더 머물며 여기저기 둘러볼 필요가 있다. 그 옛날 가장 번화가였던 칠성통이나 바닷가 탑동 쪽 혹은 동문시장이나 옛 주택가 골목을 유유히 누비며 제주 여행의 또 다른 묘미를 느껴보는 것이다. 

18코스의 원도심을 벗어나면 사라봉에 이른다. 오랜만에 만나는 격심한(?) 오르막에 온몸이 땀에 차지만 해발 148미터 사라봉 팔각정에 오르면 왠지 모를 에너지로 온몸이 다시 충전됨을 느끼게 된다. 길고 푸른 수평선과 발아래 넓게 펼쳐진 제주항 정경, 왼쪽으로 오밀조밀한 구제주 시가 그리고 뒤돌아보면 한라산과 그 앞에 펼쳐진 오름과 들과 중산간 마을들…. 사라봉 정상에서 별도봉을 거쳐 해안 가까이 중턱으로 내려오면 제주 4·3의 아픈 흔적과 만난다. 화북의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터를 지나는 것이다. 

초토화 작전이 한창 진행되던 1949년 1월 초, 일단의 군인들이 곤을동 마을로 들이닥쳤다. 67가구의 주민들은 집 속에서 그저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군홧발에 채이며 주민들이 집 밖으로 끌려 나가고 그중 젊은이 십여 명은 따로 끌려가 바닷가에서 즉결 처형된다. 군인들이 집 안으로 기름병을 던졌고 초가집들은 연이어 불타기 시작한다. 벌겋게 불타오르는 마을을 뒤로 하고 주민들은 모두 화북초등학교로 끌려와 갇혔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갇혔던 주민들 중 젊은이 십여 명이 추가로 끌려 나가 총살되었다. 다시 마을로 간 군인들은 아직 타지 않은 집들을 마저 불태워버렸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무장대 활동을 하거나 그들과 내통을 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죽이고 불태워버리는 이유를 주민들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이틀간의 일로 마을 주민 30여 명이 희생되었고, 67가구 집들은 남김없이 불태워졌다. 그리곤 폐허의 잿더미 상태 그대로 오늘날까지 왔다. 


곤을동 터를 지나 내려오는 구간은 제주의 여느 야산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정경이다. 농사를 짓지 않을 것 같은 밭들이 촘촘한 돌담으로 구획이 나뉘어 각각 누군가의 소유 영역임을 표시하는 듯 보인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그 옛날 이곳이 사람이 살았던 마을이었음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큰 방앗돌이 남아 있는 곳은 동네 여인들이 수다를 풀어놨을 방앗간이었을 것이다. 집터로 보이는 곳들 여기저기에는 아궁이의 흔적들도 남아 있다. 얼핏 밭담이라 생각했던 돌담들은 모두가 개별 집들과 올레길을 구분하는 울타리였다. 폐허로 변하고 십여 년 후인 60년대 곤을동 사진을 지금과 비교해 보면 뚜렷이 알아볼 수 있다. 지금의 돌담들 울타리 안은 불타버린 초가집과 마당 터였고, 돌담과 돌담 사이는 동네 골목길인 오리지널 ‘올레’였던 것이다. 이윽고 ‘잃어버린 마을 터’가 끝나고 화북천 하류로 내려선다. 서쪽으로 제주항 방파제와 여객터미널 정경이 제주바당과 함께 멋진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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