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것들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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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칼럼니스트

인간의 삶은 각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영위된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든 인간의 삶이 강제되거나 획일화된다면 그것은 비인간적인 삶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원한다고 자유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경제적인 여건이나 자유의지를 실현해 나갈 여건과 능력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가능하다. 또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가야 삶은 다양해진다. 삶이 쏟아내는 희한한 모습들이 연출된다. 거기에는 게으름이나 취미생활과 같은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삶의 태도가 미친 영향이 크다.

어릴 적 부모나 어른으로부터 ‘쓸데없는 짓’ 한다고 질책받은 적이 있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뭘 만들며 놀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에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놀이기구나 즐길 거리가 없었다. 스스로 만들거나 고안해서 심심함을 달래야 했다. 지금은 장난감이나 전자기기를 이용해서 게임을 즐기거나 영상매체가 보여주는 희한한 영상에 취해서 해야 할 공부나 일을 빼먹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쓸데가 있는 것보다는, 쓸데없는 것에 더, 호기심을 갖는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쁜 시간을 할애하며 음악을 들으면서 차를 마시고, 취미활동이나 여행을 즐기는 것은 의식주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쓸데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주업보다 이런 쓸데없는 일에 더 심취해서 살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예부터 근면으로 자수성가한 이들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에 그 반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게으름뱅이, 천덕꾸러기, 놈팡이 같은, 좋지 않은 호칭으로 부르며 홀대했다. 철들기 시작하면 ‘게으름은 죄악’이라 배우고 익혀야 하는 사회풍토 탓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경향은 사라지고 오히려 여유를 부리며 한가하게 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어지면서 생겨난 변화다. 다도나 취미생활과 같은 쓸데없음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쓸데없는 것들에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는 성공 여부를 성취로만 따지지 않는다. 부지런히 일만 하며 사는 삶이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다. 문화적으로도 굶주리고 영혼마저도 메마르게 된다고 믿는다. 진정한 성공은 여가 생활을 즐기며 그것을 통해 더 우아하고 지적인 휴식을 누릴 수 있는지의 차원에서 평가하고 판단하는 추세다.

이제 우리의 삶은 게으름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진정으로 풍요로울 수 없다. 게으름은 어쩌면 고상하게 시간을 보내는 여유라 할 수 있다. 문화나 예술도 게으름이나 쓸모없음의 바탕에서 생겨나고 발전한다. 우리의 삶이 다도나 여행, 취미활동과 같은 여가를 즐기며 게으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성공한 삶이란 반증이다.

노동이나 부지런함만을 쫓아 거기에 매달린다면 혹사에 찌든 병든 육신과 거친 영혼만을 안게 된다. 따라서 지금은 게으름과 같은 쓸데없는 것에 더 기대려 한다. 이것과 더불어 여유와 호사를 누리며 사는 것을 행복이라 여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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