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살아온 집엔 쌓인 이야기도 많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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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마을 선포한 선흘마을에 인생미술관 열려

17일까지 할머니의 예술창고 2023 ‘나 사는 집’전

‘나의 마당은 언제나 넓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훈장을 했던 친정집 마당도, 알동네 마당도, 지금 사는 집 마당도, 마당 가득히 콩을, 보리를, 깨를 널고 장만해 팔았습니다. 이제 94세가 된 나는 마당에서 미술관을 열었습니다. 이름하여 ‘마당미술관’.’

‘마당미술관’을 연 조수용씨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다. 선흘마을의 역사이자 제주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조수용씨를 비롯한 12명의 선흘 ‘할머니’들의 손끝에서 그려진 제주의 삶을 담은 작품전 ‘나 사는 집’이 지난 9일부터 17일까지 열리고 있다.

허계생씨의 ‘생이미술관’, 조수용씨의 ‘마당미술관’, 홍태옥씨의 ‘초록미술관’, 오가자씨의 ‘그림창고’, 부희순씨의 ‘분농미술관’, 고순자씨의 ‘올레미술관’ 등 각자의 집과 창고가 미술관이 됐다. 이밖에 6명의 미술관은 선흘체육관에 마련됐다.

㈔소셜뮤지엄과 선흘볍씨마을협동조합은 2021년부터 ‘할머니의 예술창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제주에 있는 감귤 창고를 활용해 교육을 진행했고, 할머니 교육생들은 자신의 공간에서 예술 활동을 펼쳤다. 지난해에는 그림 선생으로 최소연 예술감독과 전시 선생으로 장문경 문화예술기획자가 합류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쑥스러워 ‘나 죽거든 아이들 보겠구나’며 작품을 옷장에 꼭꼭 숨겨두었던 할머니들은 이제 ‘그림에 미친 할망’이 됐다.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삶의 터전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자라서, 밭일하느라, 제주4·3으로 학교가 불에 타 글을 배우지 못해서, 그 어떤 기록도 남아있는 게 없는 여성들의 삶이 흰 종이에 그림으로 그려지면서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셈이다.

“마음속에 품은 말이 그림으로 흘러나오니 이것이 곧 해방”이라는 할머니들은 평생 삶의 일부였던 골갱이, 호미, 베 이불, 그리고 마당에 자라나는 식물을 그리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다시 시선을 마을로 돌려 이웃 할머니의 집을 그려가는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주부로서, 농부로서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생산자인 ‘예술가’가 된 할머니들의 발자취가 아름답게 기록됐다.

부상철 선흘리장은 “‘할머니의 예술창고’가 씨앗이 돼 선흘리는 ‘미술관 마을’이 됐다”며 “내년부터는 마을에 예술작업장도 들어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과정을 함께 들여다본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는 "동네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별일 없이 수시로 모여 그림을 그리고 꽃모종을 나누면서 유토피아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우정과 환대를 생성하는 이런 마을 세포가 프랙털 시대의 무늬처럼 반복적으로 재생되면서 이 시대의 우울을 벗겨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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