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해에 손은 흔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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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벽에 걸린 마지막 달력 한 장이 황혼의 들판을 연상케 한다. 저마다 푸른 미래를 꿈꿨을 초록들이 추억의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지나는 바람을 허허롭게 맞는다. 자연의 순환이며 순리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계획하는 달, 돌아보니 빈손이다. 연초에 간절한 소망이 있었던가. 그저 크게 아프지 않고 주변이 평안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아니었던가. 시난고난하면서도 응급실로 실려 가지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지인들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지. 내게 주어질 시간의 잔고를 어림해서 무엇하랴, 가는 길 조금 빠르고 늦을 뿐인데.

지난달 하순에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빈혈 수치가 9.5g/dl로 너무 낮아 연락드린다는 전화를 받고 진료 예약을 했다. 4년 전의 검진에서도 빈혈 수치가 낮아 여러 번 병원을 들락거리며 검사했지만, 매번 10.5에서 11.5 사이를 오르내렸다. 적혈구 속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성인 남자의 경우 13g/dl 이상이라야 정상인 모양이다. 담당의는 약을 먹을 단계는 아니지만, 실혈이 걱정된다는 말씀을 하였다.

얼마 전에 머리가 어지러워 메니에르병이 찾아오나 기겁을 했었는데, 이틀 불편을 겪노라니 사라졌다. 빈혈이 원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빈혈은 어지럼증뿐만 아니라 팔다리를 저리게 하고 시림을 유발하기도 한다니, 내가 경험하는 증상이 아닌가. 요즘 세상에 정확히 원인을 찾아내면 치료는 쉬울 텐데 마음이 착잡하다.

진료 예약 날짜가 돼 버스를 타고 병원을 향하는 길이었다. 바로 앞 왼편 좌석의 젊은 여자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요량인지 미리 일어나 통로에 들어설 때였다. 갑작스레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승객들은 앞으로 쏠리고 그 여자는 앞문 쪽으로 나뒹굴었다. 비명과 걱정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는 듯 했으나, 운전자가 사고를 수습하느라 한참 정차됐었다. 앞서가던 승용차가 오른편 길가의 은행 주차장으로 들어서려 했을 때 일어난 상황이었다. 미리 방향 지시등을 켠다면 이런 사고는 없을 텐데, 차머리를 틀면서 켜는 경우를 볼 때면 딱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예방해도 다 막지 못하는 게 사고의 특성이다. 그래도 함께 노력하면 많이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안전 불감증이란 말이 사라지고, 남을 배려하는 교통문화가 성숙하면 좋겠다.

얼마를 기다리다 기대를 안고 진료실로 들어섰다. 그간의 상황을 설명해 드리니 의사는 장 검사를 하라는 한마디 얘기만 했다. 고맙게도 진료비는 받지 않았으나 다소 허탈한 기분이었다. 건강검진 할 때 위 수면내시경만 하지 말고 장 내시경도 함께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자책하지 말고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세월이 이른다.

내년은 갑진년, 청룡의 해다. 용이 신통력을 발휘해 모두에게 풍요로운 마음을 선사하길 기원한다. 꿈의 길은 열린다기에 정성으로 꽃씨를 심듯 밤하늘에 소망 몇 개 걸어놔야겠다.

만물을 다양하게 품어준 2023년이여, 안녕!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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