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에 피어나는 이름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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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논설위원

모든 일이 사람에 의해서 시작되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 도시 형성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수많은 문명과 문화도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우리는 이것을 역사라고 말한다. 독일의 시인 횔덜린은 <시대정신>이라는 의미심장한 시를 남겼다. 

“인간들은 삶을 위해 이 세상에 있다.//세월들이 그러하듯, 시간들 더욱 높이 나아감 같이.//변화가 그러하듯, 참된 많은 것 남겨져 있어,//오랜 시간이 서로 다른 세월 안으로 들어선다.//완전무결함이 그처럼 이 삶 안에 하나가 되어//인간의 고귀한 노력 이것에 순응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중요하다. 인간 존재의 시작과 끝이 이 삶과 함께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르지만 모든 삶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바위같이 무겁기도 하고 때로는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이 한 세상을 살면서 무엇인가 뜻 한 바 없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이 무엇인가 이루려 하고 남기고자 한다. 

이름이란 자신에게 부여된 후천적인 기호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 평생을 열심히 사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명예를 위해서, 인간의 도리를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걸기도 한다. 

서귀포에 기억해야 할 한 사람이 있다.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지난 10월 31일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고(故) 오광협 전 서귀포시장이다. 그는 서귀포시 호근동 출신으로 본관은 군위, 1933년생으로 향년 90세, 1995년 6월에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9대 서귀포시장을 역임했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제주국제컨벤션센터를 건립했으며, 2002 한일월드컵을 서귀포시에 유치하기도 했다. 

시대의 변화를 빨리 감지했던 고 오광협 전 시장은 현대사회에서 문화 예술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문화관광부가 1995년 ‘미술의 해’에 이중섭이 서귀포에 머물며 작업했던 집에 기념 표석을 세우게 되자, 1996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화가 이름을 붙여서 이중섭 거리를 조성했다. 연이어 1997년에는 이중섭 거주지를 복원했다. 

여기서 기억하고 싶은 것이 바로 고 오광협 전 시장의 안목이다. 수준 높은 안목은 선천적인 능력과 함께 경험과 예지에 따르는 식견이 갖춰져 있을 때 생기는 것이다. 서귀포시가 안목을 갖춘 시장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행운이었다. 이중섭 거주지 복원은 서귀포시의 미래를 위해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경제가 선진국 반열에 들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미술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화가 이중섭의 가치 또한 고조되면서 통영, 부산, 서울 등 이중섭과 연고가 있었던 지역에서는 이중섭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미 서귀포시에 이중섭 미술관이 건립되었고, 이중섭 거리에 지역 상권이 형성되었다. 미술관 관람객이 증가하면서 미술관의 규모에 대한 요구도 높아져 이중섭 미술관의 시설 확충 사업도 시작되었다.

오늘날 화가 이중섭도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고, 또 미술관이 미래 문화산업의 동력이라는 것을 인지한 고 오광협 전 시장의 이름값이 선명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독일 시인 횔덜린의 <시대정신>은 동시대 시간 속에서 이 두 사람의 인생도 역시 빛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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