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한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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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할머니의 사랑을 간직한 사람들은 할머니의 따스한 온기가 제일 먼저 생각날 것이다. 나도 먹을 것을 품에 품었다가 꺼내주셨던 할머니, 그리고 투정을 부릴 때마다 따스한 손으로 배를 문질러주셨던 그 온기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할머니에 대한 기억 속에는 여태껏 풀지 못한 의문이 남아 있다. 할머니 눈빛이 허공에 있는 듯한 느낌과 자주 숨을 토해내듯이 훠이 하며 숨을 쉬는 모습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간혹 넋 놓은 듯한 모습을 지었고 그때 생각으로 우리 할머니는 왜 웃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걸까 하는 의문이 돌아가신지 반세기가 넘어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얼마 전에 어머니와 할머니 이야기를 하다 궁금증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한숨을 쉬고는 할머니가 살아온 4·3의 아픔들을 말씀해 주셨다. 할머니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동생들을 키우며 흘렸던 눈물의 이야기와 오로지 의지였던 오라버니의 죽음으로 어린 조카들을 키우며 살았던 이야기 속에서 출가한 몸으로 친정 식구들을 돌봐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숨죽여 울었을 할머니가 그려진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키운 동생들이 죽고, 제일 잘나고 똑똑한 아들마저 잃어버렸으니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겠느냐고 하셨다.

어디 가서 왜 내 아들이, 왜 내 동생들이 죽어야 하느냐고 항변할 수도 없이 가슴에 피멍이 들고 터진 가슴을 치며 미치광이처럼 살아 온 우리 할머니, 그래서 숨조차 훠이 하고 쉬지 않으면 쉬어지지 않는 죽음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누가 우리 할머니의 삶을 이토록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들었는지 화가 나고 가슴이 답답하여 숨이 멎는다. 어떻게 살아 냈을까?

지금은 어디에도 할머니의 흔적은 없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있는 할머니에게 살아 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며 허투루 살지 않겠노라고 말씀드리며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차곡차곡 마음에 새겼다.

나도 셋이나 되는 손주들의 할머니다. 처음 할머니가 되었을 때 느꼈던 마음이 있다. 이제 비로소 뿌리가 깊은 나무가 되어 어떤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할머니구나. 이런 생각들은 지금도 나를 붙잡아 준다. 우리 손주들이 먼 훗날 할머니에 대한 어떤 추억이 간직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의 할머니 삶도 전해줘야 하는 다리이다. 우리 할머니의 삶이 우린 헛되게 살아서는 안 되는 자손임을 깨달았듯이 우리 손주들 삶에도 유산으로 남겨지길 바라며 삶의 끝자락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살아 내는 할머니의 삶을 오늘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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