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나는 이사하는 꿈을 자꾸 꾼다
이즈음 나는 이사하는 꿈을 자꾸 꾼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현정원 수필가

오늘도 이사하는 꿈을 꿨다. 정확히는 새 집에 들어가 사람들로부터 환대 받는 꿈이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이사하는 꿈을 연속해 꾸다니. 내가 꿈을 많이 꾸기는 한다. 오죽하면 중국의 누군가를 흉내 내 꿈 기록장을 만들어 봤을까. 기록은 몇 개 하다 말았다. 이야기를 정리하는 게 수월찮아서였다. 장소는 장소대로 생소하고 인물들도 내가 모르는 사람들인 데다 사건 또한 맥락이 없어서였다. 무엇보다 기억을 오래 붙들 수 없었다.

다시 눈을 감는다. 몽롱한 머릿속으로 한 장면이 다가온다. 둥그런 밥상에서 아버지와 엄마와 내가 밥을 먹고 있다. 아버지가 갑자기 수저로 내 머리를 퉁 친다. “왜, 숟가락으로 애를 때리고 그래요.” 엄마의 말에, 내가 슬쩍 머리를 만져 본다. 아무것 묻은 것도 없고 아프지도 않다.

뜬금없이 생각난 광경이 갑자기 헛갈린다. 지금까지는 이 장면, 실제 겪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새삼 꿈이었나, 의심스러워진 거다. 어디 아버지가 누구를 때릴 사람이던가, 그것도 밥 먹던 숟가락으로! 나어린 딸이라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설사 큰 잘못을 했다 해도! 어릴 땐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도 꾸곤 했으니 이 현실성 없는 일도 꿈이었을까? 하기는 기억이든 꿈이든 무슨 상관이랴. 기억으로 변한 실제는 꿈과 같지 않던가. 머릿속으로 장면이 그려진다는 점이 그렇고 머릿속 눈으로만 볼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 「포스포렛센스」에서 화자(話者)의 입을 빌려 이 세상 현실이 꿈의 연속이기도 하고 잠속의 꿈은 그대로 자신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깬 주인공이 꿈에 사로잡힌 채 꿈에서의 기분을 그대로 느끼고 있음을 깨닫는 장면에서다. 인간은 현실과 꿈, 두 세계에서 생활하고 이 두 개의 생활 체험이 뒤섞인 복잡‧혼미한 지점에 이른바 전(全) 인생이라 할 만한 게 있을 거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소설을 읽던 당시 나는 조금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꿈속 나와 실제 나는 한 나무에 핀 꽃송이들처럼 같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한, 연결되어 있지만 개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고. 꿈속 내가 너무도 자주, 실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현실의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몽롱한 상태에서는 종종, 바톤 넘기듯 글감이나 아이디어를 건네고 때론, 잘못한 것이나 고쳐야할 것을 번쩍 일깨우고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 생각이 맞는다면 내 이사하는 꿈, 가보지 않은 장소와 가닿지 못한 사람을 동경하는 꿈속 내가 두문불출 집에만 박혀 있는 실제 내게 보내는 자극이고 도발이겠다. 다자이 오사무 식으로는, 글을 쓰네 그림을 그리네 집에서만 종종대는 실제 나와 매일 장소를 옮기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꿈속 나의 생활 체험이 합쳐져…? 와아, 내 전(全) 인생,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괜스레 신이 나 이불을 걷어찬다. 침대를 빠져나오는데 고개가 갸웃 기운다. 꿈속 내가 새롭게 다다른 곳이란 게 기껏 이사한 집이고 만나는 사람 또한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러니까 꿈속 나또한 그래 봤자 집순이라는, 동시에 내 전(全) 인생도 우물 안의…!

한숨과 함께 침구를 정리한다. 그래도 숟가락 사건은 이제 확실히 알겠다. 꿈 아니고 기억이다. 꿈에서의 대화를 오래 기억 못하는 내가 엄마의 목소리를 생생히 듣는 게 그 증거다. 그날 아버지가 잠깐 실제를 벗어났던 게다. 밥상 앞에서 꿈을 꾸었던 게다, 당신과 다른 당신이 되어 보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