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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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건물에 들어서는데 기분이 묘하네요.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상대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혹시 뭐가 보이시나요?”

- 딱히 이거다 결론을 내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다른 느낌이에요. 누군가 자살을 한 거 같은데 남자 같고요.

“네, 맞아요. 어찌 아셨어요? 매입 과정에서 알았고 꺼림칙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위치가 좋았고 주변 시세보다 저렴했어요. 일이 되려 하니까 은행에서 대출도 수월하게 나왔고요. 새로 이사하면서 직원들도 새로 뽑고 잘해보자는 의미에서 한 쪽 공간에 숙소도 마련했어요. 밤샘 작업이 많아 출퇴근 시간을 줄이자는 나름의 각오였지요. 그런데 잠을 자려고 하면 괜한 불안감이 밀려오는 거에요.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요란하게 바닥을 두드리고, 또 그림자 형태가 보이기도 하고. 며칠을 뜬 눈으로 지내다가 나만 그럴까싶은 의구심에 도움을 주고 있는 후배에게 양해를 구해 같이 있어 봤는데 영락없이 똑같아서 당장 나가자고 했어요. 분명 뭔가 있구나 싶어 그날로 거처를 옮겼지요. 혹시 무슨 문제가 될까요?”

지하실로 내려가는 동안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영가의 삶의 무게는 고스란히 전해졌고 어리석음을 탓하기보다는 아픈 위로가 우선이다. 술 한잔 건네니 쓴웃음이고 안경이 있으면 빌려 달란다. 평소 하던 행동 그대로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순간이기에 부질없는 원망이지만 몇 마디 남기겠단다.

사람에게 철저히 배신 당했고 정신을 차려 보니 빚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 모두에게 버림받아야 했다. 나 하나 없어지면 남아 있는 가족이 편해질까 싶어 번민을 계속하다 내린 결정이었다. 안타까움이다. 특별한 성씨를 대고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며 떠나지 못하는 이유란다.

간섭은 있을 수 없고 다만 손을 잡아주는 동업자라며 충분한 공감으로 여기 분들의 입장도 헤아려 줘야 하지 않겠냐고 나쁘지 않은 거래 조건을 내세웠다. 작은 정성이지만 알지 못하는 처지에 고맙다고 받아 줘야 하고 이쁘다 하며 보살피는 게 인지상정인 망자의 도리가 아니겠냐 하니 마지못한 허락이다. 매달 날짜를 정해 간단한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마무리는 깔끔했다 초조하게 지켜보던 대표가 신기한 체험을 했단다. “원인 모르게 짓누르던 어깨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믿기지 않아요. 끌고 당기던 거래에 도장이 찍히고 까다로운 조건의 흥정은 무조건 찬성. 백기를 들어주니 머리 아픈 문제도 해결됐단다.

보이지 않는 믿음은 또 이렇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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