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마을 포제(酺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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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학 제주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논설위원

40여 년 전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때였다. 돌아가신 할머니 대상일(大祥日)을 맞이해서 급하게 고향집으로 내려오라는 아버님의 전화 연락이 있었다. 


마침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어서 교수님께 할머니 대상 참여로 시험 연기를 부탁드렸는데, 신식 학문을 배우신 교수님은 대상은 처음 들어본다며 제주도에 아직도 그런 제의가 행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있다. 당시 제주도에서 삼년상은 일반적인 상례였지만 육지에서는 사라져가는 풍습이었다.


이처럼 제주도의 전통 문화요소 가운데 유교적 관습은 오랫동안 견고하게 유지되어 왔다. 육지에서는 이미 사라진 삼년상을 얼마 전까지 치렀다는 것은 단순히 문화전파론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문화전파론에 따르면 특정 지역에서 생겨난 문화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고 특히 섬과 같은 고립된 지역에서는 원형에 가까운 문화 요소가 장기간 보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경우 신분 구성의 변동이 유교적 관습을 견고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1801년 조선은 공노비의 혁파를 단행했다. 18세기 말 제주 사회는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공노비였는데, 공노비가 혁파되면서 신분 구성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노비가 사라지면서 대부분의 주민이 양인으로 된 것이다. 


이러한 신분상의 변화로 양반 신분에서 행해졌던 관혼상제를 비롯한 유교적 의례가 널리 확산되게 됐다. 모든 주민들이 ‘이양반’, ‘저양반’이 됨에 따라 족보를 만들고, 유교적 관습을 철저히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양반으로 행세하려면 관혼상제의 유교적 의례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것이다.


이처럼 19세기 이후 제주 사회에 유교적 관행이 널리 퍼지면서, 마을 단위에서의 포제와 같은 유교적 제의가 행해졌다. 포제는 포신(酺神)에게 지내는 제사로 포신은 재해를 관장하는 신이다. 포신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병충해를 막아 풍년을 기원하고자 했다. 


고대 중국에서 생겨난 유교적 제의로 이후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조선시대에는 메뚜기가 창궐할 때 고을 수령이 포제를 지냈고, 국가의 중요 제사로 취급했다. 


그러나 사직단, 여단, 성황단처럼 고을에서 상시로 제사지내는 제단을 마련하지 않고 충해가 발생했을 때 일시적으로 제사를 지냈다.


제주도에서는 이러한 포제가 군현 단위가 아닌 마을에서 상시적으로 거행하는 제의로 확립되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세기 유교적 관행이 널리 행해지면서 마을 단위에서도 포제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충해가 발생했을 때만 거행하는 것이 아니라 음력 정월과 유월에 정기적으로 지내는 마을제가 된 것이다. 제주도의 대부분의 마을에서 포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는데, 한해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로 자리잡았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미신타파의 미명하에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120여 마을에서 포제를 봉행하고 있다. 과거 가부장적 유교 사회에서 행해졌던 엄격한 형식 의례에서 벗어나 마을 주민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는 연중 행사로 거듭나고 있다. 이주민들이 늘어가는 제주 마을의 현실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을 만드는 축제의 장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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