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와 허영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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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전, 작가·방송인

새해가 밝아오면 매번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창집이! 사연은 필자의 젊었을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창업하는 대학 선배의 권유로 직장을 옮겼는데 운이 좋아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교단에서 가르치는 선생질’이 그리웠다. 해서 퇴근 후, 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쥴리 학원’이라는 불우 청소년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하루는 교과서를 덮고 각자 개인의 꿈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창집이라는 아이의 차례가 되자 한참 머뭇거리더니 더듬는 말로 ‘서, 선생님 저는 정말 좋은 보육원을 지어서 워, 원장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 ‘우’하고 소리 지르며 책상을 치며 야유를 하는데, 앞에 앉은 아이가 ‘창집이 쟤, 집도 절도 없는 완전 고아래요. 보육원을 무슨 수로 지어요?“란다. 순간 느껴지는 게 있어 얼른 정색하고 ‘누구보다 창집이 꿈이 절실하니 반드시 이뤄질 거다’라고 하자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 일을 계기로 창집이와 아주 친해졌는데,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고 청소부를 하며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 가느라 고생했던 내 과거를 들려주며 ‘너도 열심히 하면 네 꿈을 반드시 이룰 거’라고 격려해줬고 그럴 때마다 창집이는 벅찬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는데 회사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게 돼 좀체 시간이 나지 않아서 ‘쥴리 학원’ 교사직을 그만두고 말았다. 그런데 그해 12월 성탄 카드 한 장이 날라왔다. 가위로 잘라 붙인 종이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내용인즉, ‘선생님 안녕하세요? 쥴리 학원 제자 임창집입니다. 선생님이 떠난 후 저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제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알 겁니다. 모쪼록 이유를 불문하시고 이번 성탄 행사에 꼭 오셔서 행사도 빛내주시고 저에게 격려도 해주십시오. 선생님 앞에서는 말을 잘 못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선생님 모습을 담고 있답니다.’였다. 그러나 몇 달 뒤 첫 해외 지사 개설을 앞두고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던 때라, 카드를 보며 그저 쥴리 학원 성탄 행사 초대장이려니 여기고 이내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새해 첫 날, 야학 교장을 맡은 수녀님이 전화했는데, ‘김 선생님, 창집이가 약을 먹고 숨진 채로 발견됐어요. 걔가 평소에 김 선생님 이야기를 여러 번 해서 아무래도 소식을 알리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전화 드렸어요.’라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서 빈소가 있다는 시립병원 무연고자 영안실을 서둘러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는 방에 ‘임창집 神位’라고 쓰인 낡은 위패 하나만이 나를 맞이했고 뒤늦게 그 앞에서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매해 첫날이면 창집이는 내 기억 속에 어김없이 살아난다. 그리고 그날 이후, 누가 봉사 활동을 권하면 조심스러운데, 일방적으로 반짝하고 나섰다가 스리슬쩍 그만두는 식의 봉사는 내 선행을 위한 허영임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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