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을묘왜변 제주대첩' 가치 조명, 역사문화자원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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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회 김기환 의원, 3일 을묘왜변 제주대첩 정책토론회
제주민 왜적과 싸운 승전사...의미 가치 전승, 역사자원화 절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김기환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이도2동갑)은 3일 도의회에서 ‘을묘왜변 제주대첩 의미와 가치 전승’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김기환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이도2동갑)은 3일 도의회에서 ‘을묘왜변 제주대첩 의미와 가치 전승’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조선시대 대규모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제주의 군관민이 주체가 돼 제주를 지켜낸 ‘을묘왜변 제주대첩’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조명하고, 역사문화자원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김기환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이도2동갑)은 3일 도의회에서 ‘을묘왜변 제주대첩 의미와 가치 전승’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제주연구원 현혜경 부연구위원은 주제 발표에서 “을묘왜변은 1555년(명종 10년) 5월 전라남도를 시작으로 전개돼 남해안 일대가 큰 피해를 입은 가운데 전남 영암의 수성(守城·산성을 지킴)과 제주에서의 파적(破賊·적을 물리침)으로 종결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현 위원은 “제주 을묘왜변은 1555년 6월 21일 명종 10년 을묘년에 왜구 1000여 명이 제주를 침입해 6월 27일 제주성을 둘러싸고 3일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김수문 목사 등이 활약해 이룬 대첩“이라며 ”현재까지 제주민이 주체가 돼 왜적과 싸운 제주 유일의 승전사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 군관민이 기개와 용기로 일당백 승전을 이끌어 내면서 당시 조선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 질서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조선 명종은 제주사람들이 왜구 파적(破賊)을 ‘대첩’이라 명명했다. 

하지만 을묘왜변 제주대첩은 제주 도민들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 을묘왜변을 같이 경험한 전남 영암은 을묘왜변에 대한 기억을 역사문화자원화를 통해 실현하고 있다. 영암지역에서는 크게 양달사 의병장 일대기 스토리텔링 자원화와 영암읍성 역사자원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남, 부산, 통영, 해남, 진도, 남해, 거재 등 다른 지역에서도 영암대첩, 부산대첩,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옥포대첩 등을 기반으로 역사문화자원 발굴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 위원은 “제주대첩의 경우 현재 조례가 전무한 실정이며, 기념사업을 전개할 운영주체 부재로 여전히 지속적인 기억의 역사로 편입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을묘왜변 제주대첩 기념사업회 구성과 조례 제정을 제안했다.

김기환 의원은 “을묘왜변 제주대첩은 제주인의 기상, 제주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라며 “을묘왜변 제주대업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가치 전승, 역사문화자원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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