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문화유산 1번지, 전통이 살아숨쉰다
제주 문화유산 1번지, 전통이 살아숨쉰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201)문화재 보고인 성읍마을

성읍민요,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정소암(鼎沼岩) 화전놀이는 화합의 장

정의골 축제, 각종 공연 선보여
성읍 지키는 문지기, ‘벅수머리’(돌하르방)

▲초가지붕이 아름다운 정의현성의 풍광


정의현청 소재지였던 성읍마을의 지붕은 기와와 초가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객사·동헌·문루·향교 등의 지붕은 기와이고, 민가들은 초가였다. 산간마을인 성읍은 주변에서 새를 쉽게 얻을 수 있어 매년 초가지붕을 단장했다. 


마을 주변의 새왓(새밭)에서 채집한 새로 지붕을 덮고, 새를 꼬아 만든 집줄로 지붕을 가로세로 엮어지도록 얽어 묶는다. 집줄은 ‘호랭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꼬아나가고, 만들어진 집줄 2개를 ‘뒤치기’와 ‘어울리게’라는 도구를 이용해 하나가 되게 한다. 지붕을 덮은 새가 비바람을 맞아 내려앉는 보름 후에 집줄을 다시 조여 묶고 일정한 길이로 잘라 낸다. 지붕을 새로 덮은 3·4월에는 마을 전체가 낮에는 햇빛을 받아 노란색으로, 저녁에는 노을빛 받아 황금색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풍광이 연출된다. 


▲민요의 저장고인 성읍마을


성읍에는 많은 노동요와 의식요, 창민요가 전해지는데, 그중에서도 성읍민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풍류를 즐기며 불렀던 창민요이다. 육지에서 전래된 창민요는 성읍에서 지속적으로 변용되면서 보존돼왔다. 


1959년부터 성읍민요를 채록했던 고 김영돈 교수(제주대)에 의하면, ‘관덕정앞·계화타령·질군악·사랑가·용천검·중타령’ 등의 창민요는 오직 성읍에서만 전래되고, ‘동풍가·봉지가·산천초목·오광산타령’ 등도 대체로 성읍에서 불린다고 했다. 성읍의 창민요는 경서지방(경기·황해·평안도)의 민요와 관련이 있다지만, 정작 그곳에서는 지금 전승되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1989년 성읍민요를 ‘제주민요’라 명칭하고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성읍의 풍류와 민속은 ‘정소암(鼎沼岩) 화전놀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진달래꽃이 만발한 삼짇날(음력 3월 3일)을 맞아 영주산 남쪽 천미천 계곡에 위치한 정소암에서는 정의현감이 주재하는 큰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이때 기생들은 ‘관덕정앞·계화타령·신목사 타령·봉지가·산천초목’ 등을 부르며 흥을 돋우고, 사령들은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칼춤을 추었으며, 향교의 유생들은 글을 지어 솜씨를 겨루었다. 이날은 정의현 각 지역에서 모여든 양반들도 참석해 마을의 난제들도 협의했던 고을의 축제이자 화합의 장이었다. 


▲정의현감 부임행차 등을 재현하는 정의골 축제 


성읍에는 매년 걸궁(乞窮)이 행해져 왔다. 걸궁은 정월대보름 전후에 익살스러운 가면과 복장으로 꾸민 놀이패가 각 가정을 돌며 축원을 해주고 돈과 곡식을 구해 마을의 경비를 마련하던 민속놀이인데, 다른 마을에 비해서 규모가 훨씬 컸다고 알려진다. 


성읍에서는 매년 ‘정의골 축제’를 개최해 ‘조팟불리기·검질매기·도리깨질·방에질·레기·비기·영장행렬·달구질’ 등의 민속놀이와 전통민요 공연을 선보이며, 취타대를 앞세운 정의현감 부임 행차도 재현된다. 성읍주민으로 구성된 취타대는 전국에서 주민들로 구성된 최초의 것으로, 제주도 내의 탐라문화제, 서귀포 칠십리 축제 등에 초빙돼 큰 갈채를 받는다. 


▲성읍마을에 있는 다양한 문화재


성읍마을에는 다양한 국가지정문화재와 도지정문화재가 있다. 국가지정문화재로는, 성읍마을 자체와 ‘조일훈·고평호·이영숙·한봉일·고상은’의 옛 가옥 5채는 ‘중요문화민속문화재’이며, 제주민요로 명칭이 되는 성읍민요는 ‘중요무형문화재’이다. 


또한 1000년 느티나무와 600년 팽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도지정문화재로는, 정의현성의 성문을 지키는 돌하르방 12기는 ‘민속자료’로, 정의향교·전패·근민헌은 ‘유형문화재’로,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초가를 단장하는 장인인 초가장·제주도 행상소리는 ‘무형문화재’로, 전통음식은 ‘마을장인’으로 각각 지정돼 있다. 


이 밖에도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비지정문화재들이 있다. 객사·성곽·문루, 마을 안길을 활처럼 이어지는 돌담, 안할망당, 초가지붕을 이는 모습과 걸궁패, 정소암 화전놀이, 고랑과 원님 전용의 우물, 관아의 말을 관리했던 마방터, 성곽 밖 해자 터, 원형으로 남아 있는 돗통시 등은 성읍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성읍마을 돌하르방과 성곽


성읍마을에는 동문·서문·남문 앞에 각 4기씩 총 12기의 돌하르방이 있다. 문화재의 공식명칭인 돌하르방을 성읍에서는 ‘벅수머리’라 불렀다. 


성문 입구에 세워진 돌하르방은 고을에 들어온다는 위치 표시의 역할과 함께 고을의 태평을 지키고, 병화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 하게 하는 상징적 기능이 있다. 높이가 낮은 정의현성의 돌하르방은 성읍마을의 무사 안녕을 지키는 든든한 문지기로서 마을의 어르신처럼 푸근하고 후덕한 표정을 갖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의하면, 정의현성은 1423년 고성리에서 성읍리로 현청을 옮기면서 제주도 삼읍 장정들을 동원해 1월 9일부터 13일까지 불과 5일 만에 완성됐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정의현성 규모는 둘레 2520척, 높이 13척이었다. 성곽에는 동·서·남문 외에 치(성벽에서 ‘ㄷ’자로 나와 있는 구조물)와 여첩(女牒)이 설치됐다. 그런데 ‘탐라순력도 정의강사’의 모습과 현재 복원된 동·서·남문의 모습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관련 전문가들의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성읍마을은 기나긴 역사가 흘러가는 ‘slow city’이다. 때문에 성읍을 찾는다면 바람에 마음을 맡겨 천천히 이모저모를 음미하면서 구경하기를 권한다.  

          
글·사진=강문석 (사)질토래비 전문위원·성읍별곡사진갤러리 관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