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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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동생이 김치를 택배로 보내왔다. 한때 내가 서울 자식에게 보냈던 것처럼, 마치 허한 속을 채워주듯 빈틈없이 이것저것 챙겨 넣었다. 무엇이든 나누어 주길 좋아하는 동생의 우애는 삶의 든든한 기둥이다. 동생은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후, 봄부터 텃밭 첫 농사에 정성을 들였다. 농사일이 서투르나 무농약 농사를 짓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매일 눈 뜨면 새벽 밭고랑을 밟으며 징그러운 벌레와의 전쟁 같은 싸움에 천당 가기는 틀렸다고 진저리를 치며 거둔 수확물이다.

배추는 고소하고 달착지근하다. 썰기 알맞은 포기에 퍼런 겉잎까지 부드럽다. 강화도산 새우젓에 생새우까지 현지에서 직접 사 왔다. 고춧가루는 고향 고모 댁에서 보내온 것으로 모두 우리 땅에서 거둔 양념으로 버무렸다. 돼지고기를 삶아 더운밥에 죽죽 찢은 김치를 서리서리 얹어 한입에 넣었다. 이런 맛이었을까. 유년 시절이 된 것 같다. 포기가 덜 앉아 배춧잎이 억셌으나 달착지근하고 고소했던 김치. 젖을 떼고 이유식 단계를 지나 어머니가 해주셨던 손맛은, 그 사람의 맛감각으로 인지돼 평생을 간다. 입맛이 없거나 몸이 불편할 때면, 어머니의 옛 음식이 간절해지곤 한다.

김장을 거른 지 두 해가 된다. 주문 절임 배추에 맛깔스러운 양념을 넣어도 예전 같지 않았다. 김치가 무르기 일쑤고 손맛이 전과 같지 않은지 내 김치맛을 찾을 수 없었다. 요즈음 토종 배추는 찾기 힘들다. 새로운 종자로 기른 배추가 별다른 맛이 없는 것 같다. 김치냉장고에서 숙성시킨 김치가 뜰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익힌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 과학의 힘이 재래식 저장법을 따라가지 못하는가 보다.

김장철이면 서해안 고향의 향토 음식인 게국지가 그립다. 무청에 김장하고 남은 배추 시래기를 노랗게 익은 호박을 숭덩숭덩 썰어, 게장 국물이나 참조기를 절였던 젓국물이 주재료였다. 독이 올라 칼칼한 끝물 풋고추를 절구에 찧고 비벼 시큼하게 익어야 제맛인 게국지. 방식이 옛날과 다르게 변했지만, 여행객에게 별미로 여길 만큼 맛 기행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김장하느라 온 가족이 모여 잔치 같던 시절은 옛 얘기가 돼간다. 예전처럼 많이 먹지 않아서 사 먹으니 편한 점도 있다. 힘든데 그만 손을 놓으라던 딸에게 이젠 사서 먹으라 일렀다. 자식들에게 오래도록 김치만은 내 손으로 해주리라 생각했었다. 먼 후일 엄마의 김치는 참 맛있었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었는데 그만 접었다.

김치 산업이 날개를 달았다. 해외에서 건강식으로 알려져 주목받는 K-김치.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으로 김치 수출이 올해 역대 최고란다. 외국인이 맵다고 호호 불면서 연신 맛있다고 ‘엄지척’ 치켜세우는 걸 보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그뿐만 아니다. 구글 ‘올해의 검색어’에서 비빔밥 레시피가 1위를 차지하고, 미국에선 냉동 김밥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보도다. 한류를 타고 우리의 먹거리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김치는 여러 재료를 넣은 화합의 음식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서로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김치처럼 정치, 사회도 ‘엄지척’하는 시절은 언제 올까.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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