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의 색다른 제주여행] 아름다운 풍광 아래 잠든 4·3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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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 일원, 수십 년 전에는 민간인 집단학살지 
옛 상처 헤아리고 보듬어가며 같은 일 반복되지 않길

‘58년 전 정뜨르 비행장에서 자행된 4·3 민간인 집단학살에 대한 실체가 드러났다.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동북쪽 지점에서 3개월 동안 2차 유해발굴을 벌인 결과…(중략)…이번에 발견된 유해는 1949년 10월 2일 육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민간인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당시 작성된 수형인명부에서 희생된 인원은 249명으로 파악됐다.’ 


2008년 11월 21일자 제주일보 기사 일부다. 11년 후인 2020년 1월 19일자 같은 신문 기사에는 이어진 유해발굴의 결과를 싣고 있다. 


‘…1950년 8월 4일 제주경찰서·주정공장에 수감된 500여 명을 제주항으로 끌고 간 후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가 수장시켰다. 두 번째 집행은 8월 19~20일 제주북부 예비검속자 300여 명을 제주공항에 끌고 가서 총살시킨 뒤 암매장했다…(중략)… 장윤식 4·3평화재단 팀장은 “공항 부지를 전부 파헤치지 않는 한 (더 묻혀 있을) 유해를 발굴하는 것은 어려워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4·3평화재단은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간 진행된 유해 발굴 사업으로 제주국제공항(388구) 등 5곳에서 모두 405구의 유골을 찾아냈다.’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군용비행장이 그 모태다. 이 지역 이름을 따 ‘정뜨르 비행장’으로 불렸다. 올레 10코스의 ‘알뜨르 비행장’과 대치되는 위치요 지명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제주에 만든 다섯 개 공군 비행장 중 하나다. 물론 제주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서린 곳이다.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떠나자 다른 여느 군용 기지와 마찬가지로 정뜨르 비행장도 용도 폐기됐다. 6·25전쟁 이후까지 그대로 방치되다가 민간공항으로 개발이 시작된 건 1950년대 후반이다. 이후 몇 번에 이어진 활주로 확장 공사를 거치면서 연간 수천만 명이 이용하는 현재의 국제공항으로 변모해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늘을 날아 제주에 착륙하는 여행객들은 잘 모를 것이다. 드넓게 깔린 활주로와 그 주변에 수많은 원혼(冤魂)들이 깔려 있음을 알게 되는 건 별로 달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긴 하다.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떠난 정뜨르 비행장 일대는 이후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됐다. 거친 바람만 일렁이는 황야 지대였다. 누구도 일부러 찾을 일 없는 이곳에선 한 시절 무섭고 끔찍한 일들이 반복됐었다. 4·3 당시 정뜨르 비행장 일대는 일상적인 집단 학살처이자 암매장 터로 악명이 높았다. 주민들 대부분은 근처 접근도 불가능했고 총소리만 수없이 들어야 했다. 


이곳에서의 학살과 암매장은 4·3 발발 6개월 후인 1948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집중됐다. 해안선에서 5㎞ 이상의 중산간 지역에 대한 소위 ‘초토화 작전’ 5~6개월 동안이었다. 무장대에게 협력했다는 죄목을 씌워 249명의 주민을 총살하기도 했고, 그 전과 후로도 중산간 등지에 남았다가 끌려온 수많은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곳에서 즉결 처형되곤 했다. 


6·25 발발 직후인 1950년 8~9월 들어 또다시 대량학살이 재현됐다. 공산군에게 협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혐의를 받은 ‘예비검속’ 대상자들이 그 희생자들이었다. 수차례에 걸쳐 정뜨르 비행장으로 이송돼 처형 후에 암매장됐다. 


6·25 전쟁이 끝나고 모든 상황은 종결됐지만 정뜨르 비행장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들은 누구의 입에도 오르내리지 못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구체적 실상을 알지 못했다. 어렴풋이 짐작만 하는 이들은 꽤 있었지만 모두가 두려움 속에 숨죽여 쉬쉬해야만 했다. 1950년대 후반 들어 민간공항으로의 개발이 시작되고, 이후 80년대까지 몇 차례 더 활주로 공사가 이뤄지면서, 암매장터 일대도 수차례 파이고 뒤집혀지고 그리곤 단단히 다져졌다. 


공항 일대에는 통틀어 800여 구 정도의 4·3 관련 유해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중 절반 가까이가 2007년부터 시작된 1차 유해 발굴 기간에 발굴이 됐다. 천추의 한을 품고 아스팔트 밑에서 서로 얽혀 봉인됐던 원혼들이 반백 년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봉인 해제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의 유해를 대상으로 2018년부터 2차 발굴이 재개돼 2020년 1월 신문 기사 내용과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올레 17코스는 제주공항 활주로와 나란히 해 제주시 원도심으로 들어가는 루트다. 광령을 출발해 코스 절반을 걷고 나면 고즈넉한 도두항에 이른다. 야트막한 도두봉에 올라 드넓은 바다와 수평선을 등지고 서면 한라산과 섬의 산북 전체가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발아래로 시원스레 펼쳐진 제주공항 활주로 정경에 한참 넋을 놓게 된다. 수시로 오르고 내리는 다국적 비행기들 모습도 형형색색 역동적이기 그지없다. 


이런 아름다운 전경을 마주하며 70여 년 전 이 활주로 벌판에서 있었던 살벌한 역사의 일들은 구태여 떠올릴 필요까지는 없을 지도 모른다. 현명한 우리 세대가 옛 상처들을 찾아내어 헤아리고 보듬어가며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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