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과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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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재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어머니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당시에도 이야기는 나왔지만,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됐고 제사 때도 분위기는 그렇지만 이렇다 하는 결론이 안 나니 매번 꼬리 자르기네요. 꿈에서도 좋은 모습은 없고 말없이 왔다 가시는데 그런 날이면 일도 손에 안 잡히고 혼자 울음으로 끝나져요. 이런 딱한 사정을 알았는지 할아버지가 남겨주진 자투리 땅이 도로가 나면서 보상이 나왔어요.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하는 판국에 알량한 돈 몇 푼에 눈이 멀어 형제끼리 이쪽 저쪽 편 가르기 싸움을 하고 있어요. 조금씩 양보해서 부모님에게 자식의 도리를 다하자는 의견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잘난 네가 해라 막말에 고성까지 동네 창피하지만 분명한 현실이기에 알았다고 대답을 했어요. 보란듯이 해 드리고 싶지만 방법도 절차도 모르니 답답하기만 하네요 .”

부모와 자식은 거래 관계가 아닌 필연이다. 죽음은 잠시 헤어짐이고 태어남은 반복되는 과정이고 과거와 미래는 동일선상에 있다. 서로의 희생이 필요하고 아끼며 사랑하자가 본래의 목적이다.

근거 있냐 따지면 눈으로 안 보이니 미소로 대신해야 하지만, 그들만의 소통법이였던 생전의 버릇이나 기쁠 때와 슬플 때를 끄집어내야 한다. 잘한 것에 칭찬은 물론, 못난 것에 흉은 마음의 거리를 좁혀낸다.

열 손가락 물어 안 아픈 곳이 없다. 하지만 이쁜 정성에는 고맙다는 인사이고 섭섭하다는 무거운 침묵이다. 부담 주지 말고 도움만 주고 싶다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가슴에 떨림이다. ‘가난한 행복의 가치를 소중하라’가 첫째고 남아있는 식구들과의 화합이 둘째이다. 집안 어딘가에 남아있는 흔적을 우연히 발견했다면 힘내라는 응원의 표시이다.

의식 중에 갑자기 끼어드는 영혼이 있는데 필시 무슨 사연이 있는 친인척이 대부분이다. 불쌍한 처지 안타까운 위로를 들어야 하기에 염치불고 자리에 끼어 달라는 한 맺힌 절규는 이 순간을 위해 많은 세월을 탄식과 한숨으로 보냈는지 충분한 공감이다. 잊혀졌다는 것에 분노하고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한 집착에는 회유와 설득이 필요하다. 모르면 지나치겠지만 알았으면 적당한 묘안을 짜내야 한다. 그들도 한때는 자랑스러운 가장이었다. 천국과 지옥은 별개의 문제이고 종교에 따라 해석은 다르지만 특별한 재주의 믿음보다는 하늘의 별을 보는 심정이다. 먼 옛날 동심을 되짚어 보면서 입에서 외쳐 보자. “은혜에 감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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