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수호에 앞장선 '제주해녀 기념관' 울릉도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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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에 연내 '제주해녀관' 설립
해녀들, 광복 이후 1950년대 독도 바다 누비며 주권 수호 기여
제주도 "제주해녀들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산증인"
1950년대 김공자 해녀가 독도 서도 물골에서 수비대원 또는 뱃사공과 얘기하는 모습. 사진 경상북도 제공.
1950년대 김공자 해녀가 독도 서도 물골에서 수비대원 또는 뱃사공과 얘기하는 모습. 사진 경상북도 제공.

광복 이후 독도 수호에 이바지한 제주해녀를 기리는 전시관이 들어선다.

14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국가보훈부는 경북 울릉군 북면에 있는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에 제주해녀관을 설치·운영한다고 14일 밝혔다.

국가보훈부는 1억3400만원을 들여 제주해녀의 독도 생활 사진과 영상, 구술채록집, 거주시설(모형), 물질도구 등을 전시하는 제주해녀관을 연내 개관한다.

제주해녀들의 첫 독도행은 1935년으로 기록됐다. 독도 바다의 수산자원을 탐냈던 일제는 민간 어업조합에서 제주해녀를 독도에 보내 수산물을 수탈해갔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일본 어선과 순시선은 수시로 독도 바다를 드나들었다. 당시 사람이 살지 않았던 독도에는 1953년부터 1956년까지 4년 동안 제주해녀들의 원정 물질이 본격화됐다.

해녀 28명은 독도 서도의 ‘물골’에서 몇 달씩 머무르며 미역·전복을 채취했다. 물골은 독도에서 유일하게 ‘빗물 고인 물’이 있는 천연동굴로 해녀들은 씻고 마실 수 있는 물이 있는 동굴과 움막에 머물며 생활했다.

당시 독도에서 물질을 한 김공자 해녀는 “가마니를 이용해 물골에 임시숙소를 만들었고, 수 십명이 이곳에서 2~3개월간 거주하며 미역을 채취하며 바다를 지켰다”고 밝혔다.

김남일 경상북도 환동해지역본부장은 “1950년대 미역 등의 채취를 위해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제주해녀 수십 명을 모집, 울릉도를 거쳐 독도로 물질을 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앞서 제주해녀의 원정 물질은 일제시대에 이어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울릉도 주민 33명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는 제주해녀가 원정 물질에 나섰던 1953년 4월에 결성됐고, 동도에서 경비 업무를 섰다. 1956년 12월 국립경찰에 수호 업무와 장비가 인계되면서 민간조직은 해체됐다.

보훈부는 의용수비대원 33명의 공로를 기려 2017년 129억원을 투입, 울릉도에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을 건립했다. 이곳에는 독도 모형과 나무 대포, 수비대 활동상, 영상관이 들어섰다.

정재철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정부는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 수호에 제주해녀들이 기여한 역할을 인정해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에 제주해녀관을 연내 설치하기로 했다”며 “오랜 세월동안 독도의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가며 살아왔던 제주해녀들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산증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기준 울릉도에는 제주 출신 해녀 9명 살고 있다. 이들은 일제의 남획으로 멸종된 독도 바다사자(강치)의 마지막 증언자이기도 하다.

독도 동도 앞바다에는 제주해녀들이 올라앉아 쉬었던 ‘해녀 바위’가 남아있다.

김공자 해녀가 1950년대 독도 바다사자인 '어린 강치'를 안고 있는 모습. 사진 경상북도 제공.
김공자 해녀가 1950년대 독도 바다사자인 '어린 강치'를 안고 있는 모습. 사진 경상북도 제공.
울릉도에 있는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에 전시된 독도 모형.
울릉도에 있는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에 전시된 독도 모형. 사진 경상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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