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겨울과 새봄 사이의 변화와 대한(大寒)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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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애월문학회장

이제 3일 후면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는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만난다.

대한이 지나도 여전히 눈은 퍼붓지만 소한 무렵처럼 코끝이 쨍하게 하는 맹추위가 기세를 떨치는 것은 아니다. 눈은 내리는 즉시 녹아 버리거나, 아무리 오래 가도 이틀을 넘기지 못한다. 그만큼 날이 푹 해졌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추위 때문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옹송그린 모습으로 거리를 종종걸음 치지만, 이미 주변에는 봄을 알리는 징표로 가득하다.

눈 속에서 매화가 피어서 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린다. 철 이른 옷을 입고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이나 우연히 마주친 골목 귀퉁이 꽃집의 신선한 꽃내음이 봄을 느끼게도 하지만, 산간도로 응달진 곳에 수북히 쌓여있는 잔설 위로 북풍이 몰아칠 때면 여전히 겨울의 위세를 실감한다.

매화에 살포시 눈이 내리면 꽃과 눈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그 흰빛은 겨울 끝자락을 비치는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이다. 눈의 계절 겨울과 새봄은 그렇게 서로 만나서 자연의 순환을 보여준다. 만물의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함으로써 새 생명을 꽃피우듯, 인간 세상은 젊은 새 세대의 등장으로 사회의 모습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과 교묘하게 병치된다. 그렇게 우리의 몸은 사라지지만 우리의 생명과 정신은 이어진다. 인생의 황혼이 슬프기도 하지만 장엄하기도 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겨울이 오면 나는 언제나 책을 준비한다. 독서만 하면서 한 겨울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곳곳에 인연의 끈을 맺어놓은 터에 그런 호사를 누릴 일은 거의 없었다. 작은 시간 조각들을 이용해서 책을 읽는 것이 최선이다. 한 해 동안 땀 흘리며 노력한 끝에 결실을 맺는 것들을 되돌아보며 나 자신을 점검하는 것은 겨울에 하게 된다. 결과들에 진지하게 성찰하고, 조만간 맞는 새봄에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를 점검한다. 이것이 바로 겨울이 역할이다. 한편으로 겨울의 끝자락에서 새봄을 바라보고 있지만, 나 자신은 인생의 황혼에서 병과 벗하여 귀중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만물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함으로써 새 생명을 꽃피우듯, 인간은 세상은 갓 대학을 졸업한 젊고 푸른 세대로 바뀜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겨울이 끝나면서 자연의 순환에 큰 획을 긋는 것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사회의 모습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과 비교된다. 그렇게 우리의 몸은 사라지지만 우리의 생명과 정신은 이어진다. 인생의 황혼이 슬프기도 하지만 서산에 지는 노을처럼 장엄하기도 한 것은 ‘온고지신(溫故知新)’ 때문일 것이다. 젊고 건강할 때는 내 삶의 기쁨을 누릴·줄 모르지만, 막상 칠순이 돼 늙고 병들어야 젊고 건강할 때의 기쁨을 충분히 알아차린다.

새봄을 눈앞에 두고 나 자신의 한해 살림살이를 돌아본다. 나는 과연 백년 인생을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않았는가. 절기의 순환과 함께 나의 몸은 잘 변화했는가. 그에 따라 내 마음과 정신은 역시 성숙하게 바뀌었는가. 이런 저런 상념에 겨울밤이 깊어간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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