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떠든다고 위기가 극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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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진실이라고 말하지만, 아니 말하고 싶겠지만 ‘덤불’ 속에 가린 사건은 그저 말하는 자의 진실 아닌, ‘제멋대로’ 진술일 수 있다. 


 아주 오래된 영화 『라쇼몽(羅生門)』(1950)은 단편소설 「덤불 속(藪の中)」(1921)을 중심 서사로 삼으면서 단편 「라쇼몽」을 영화의 처음과 끝에 배치하고 있다. 무사가 살해당한 사건을 다루는데, 그에 대한 진술들이 각기 다르다. 도적 ‘다조마루’는 여자만 뺏으려 했는데 “어느 쪽이든 살아남은 남자를 따르겠다.”는 여자의 말 때문에 무사를 죽였노라고 자백한다, 매우 의기양양하게. 여자는 도적에게 못된 짓을 당하고, 그 모습을 싸늘하게 지켜보며 삼나무 밑동에 묶여 있던 남편을 단검으로 찔렀다고 자백한다. 그런데 무녀의 입을 통해 무사의 혼령 또한 진술한다. 아내가 도적에게 자신을 어디론가 데려가 달라고 간청하고, 자신마저 죽이라고 했다. 도적이 고민하는 사이에 아내는 도망하고, 자신은 자살했다. 소설 속에서는 무사와 도적이 대단한 칼싸움을 벌이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개싸움’이 없다. 사건의 실체는 불분명하고 그저 제멋대로 진술들이 나열될 뿐.


 ‘마리아 투마킨’의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암실문고, 2023.)에서는 마약중독자, 나치 집단 수용소 생존자, 가정 폭력 피해자와 같은 이들이 사회적 사건으로 떠올라 드러난 것과 그 실체가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난 네 고통을 이해해”라고 말하지만, 이해는 환상에 가깝고, 섣부른 호혜로 오히려 피해자들을 더 난감하게 만든다는 것.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아이들은 1980년대까지 생존자로 여겨지지 않았다. 전쟁 중에 일어났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들처럼 평생 전쟁에 사로잡혀 있을 리 없다고 믿었던 것.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믿음이었다. 2세대 생존자라는 개념도 1970년대에 생겨났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 후 태어났는데 자기 가족의 과거는 가장 근본적인 정보가 되며, 그것을 풀어서 해독하려면 평생이 걸린다고 한다. 감자 구덩이에 숨어서 살아남은 아이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역사가 되풀이되는 으스스한 감각”을 느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고통을 모르면서 자신들의 선입관과 편견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판사, 선임 형사, 언론, 복지부, 법원, 국가를 질타한다.


 국가적 재난 상황처럼 느껴지는 요즘 현실을 두고 정부나 정치권, 기업과 엘리트들이 벌이는 행태가 ‘제멋대로 진술’처럼 여겨진다. 한국의 근대화와 개발에서 이룩한 기적 같은 성취는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장경섭은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문학사상, 2023.)에서 “한국의 포스트 압축근대적 환경의 문제는 빈곤, 기근, 정치적 균열, 사회갈등, 혼란 등으로 점철된 탈식민기 환경만큼이나 심각하다.”(278쪽.)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보수적 정치와 행정, 기술·과학, 산업 엘리트들이 현재 발목을 잡는 압축적 개발과 근대화를 위한 정책들을 확장하고, 재개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총선이 코앞이다. 일찌감치 균열이 나 있는 정치가 현재의 난국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자기를 위한 정치 90%, 국민을 위한 정치 10%”라는 조정래 작가의 일갈처럼, 국가적 재난 상황 속에서도 나침반 없는 항해를 지속하는 정부, 제 밥그릇 지키느라 이전투구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열불이 난다. ‘제멋대로’ 떠든다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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