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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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윤 수필가

에스토니아 합살루 해안 길을 걷는다.

라네마 박물관에서 아이볼란드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14km쯤 되는 호수 같은 바닷가 산책길이다. 접어드는 순간 발트해를 향해 놓여있는 하얀 벤치들이 시선을 끈다. 등받이에는 ‘합살루 1279’와 기증자 이름이 적힌 작은 명패가 붙어 있다. 발트해를 바라보며 인생 여정과 자존감을 사유할 수 있도록 주민들이 헌납한 것이라 한다.

합살루는 수도 탈린 남서쪽으로 100km쯤 떨어진 해안에 자리한 라네마주의 주도로, 여의도 세 배쯤 되는 면적에 1만여 명(2022년)이 거주한다. 지대 높이가 바다와 비슷한데 포크처럼 생긴 만(灣)과 섬들, 간간이 펼쳐 놓은 갈대밭이 어우러져 한 폭 그림과 같다. 게다가 따뜻한 바닷물과 치유력이 있다는 진흙, 고즈넉한 분위기로 ‘발트해의 베네치아’라 불린다.

이곳이 세계인에게 알려진 것은 1825년, 러시아 제국 군의관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에게 이곳의 진흙이 질병 치료에 효험을 소개하면서다. 그 후로 러시아 귀족과 차르, 왕실 가족이 즐겨 찾는 여름 천국이 되었다. 구(舊)소련의 지배를 받던 1907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곳을 잇는 399km 철길을 놓기도 했다.

호젓한 길을 걷노라니 장미 정원에 둘러싸인 유서 깊은 민트색 쿠르살 카페(1897년), 바다 위 파빌리온, 진흙 치료 선구자 훈니우스 흉상 등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펼쳐 놓은 갈대밭과 한가롭게 노니는 백조들의 정경을 바라보며 얼마를 걸었을까. 빛바랜 묵직한 벤치가 시야에 다가온다. 1867년, 차이콥스키가 발트해로 넘어가는 석양을 보며 감탄했다는 이곳에, 그의 탄생 백 주년을 기념하여 백운석(白雲石)으로 만든 ‘차이콥스키 벤치(1940년)’이다.

벤치 등받이 위쪽 중앙에 청동으로 양각한 차이콥스키 얼굴과 그 바로 밑에 “P. I. TCHAIKOVSKY(1840~1893)”, 초상화 좌우로 새겨 놓은 음계가 이채롭다. 차이콥스키가 이곳을 산책할 때 한 소녀가 읊조리는 민요를 듣고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 「비창」의 첫 멜로디이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자 가장 슬픈 교향곡 중 하나가 아닌가. 아내가 벤치에 앉아 차이콥스키 얼굴을 어루만지자 어디선가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오며 거장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이 벤치는 「합살루의 추억」을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의 20대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러시아에서 음악 학교에 다니던 시절, 절친한 친구와 그 가족과 함께 휴양차 이곳에 왔다. 그때 차이콥스키를 짝사랑하던 친구 여동생 ‘베라’가 황혼 녘에 사랑을 고백하지만, 동성애자인 그는 그녀의 지순한 사랑을 받아줄 수 없어 안타까움을 오선지에 옮겼다. 1악장은 폐허가 된 합살루 성을, 2악장은 발트해의 석양을, 그리고 3악장은 베라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피아노 소품으로 구성했다. 특히 3악장을 듣고 있노라니 차이콥스키와 베라의 만나는 장면이 아련히 떠오르며, 황홀하게 타오르다 스러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쓸쓸한 뒷모습이 잔영으로 남아 애잔함을 더하게 한다. 영원히 완성될 수 없는 미완성이 완성인 사랑, 이루지 못한 사랑에 아쉬움과 미안함은 시대를 초월해 모든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이리라.

차이콥스키의 뜨거운 선율의 사랑을 보듬으며 발걸음을 돌린다. 은빛 갈대밭 위로 구름이 살포시 내려앉고, 잔잔한 수면 위에 서너 마리 백조들이 유희하다 날개를 퍼덕인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하얀 벤치에 앉아 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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