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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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흥 수필가/논설위원

 

해거리는 과실수에 과일이 많이 열리는 해와 아주 적게 달리는 해가 있어 반복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를 격년결과(隔年結果)라고 한다. 이는 귤나무나 감나무에서 흔히 나타난다. 나무는 한 해 열매가 풍성하게 달리면 이듬해 뿌리는 약하게 된다. 꽃이 피지 않거나 적게 피어 잎만 무성하다. 해거리는 자신이 목숨을 지탱하는 개체 수를 조절하는 능력이 있어 자연의 지혜가 놀랍다.


 정년퇴직 전 현직에 있을 때 관리하던 감귤원이 있다. 퇴직 후 농업용 트럭을 마련해 아내와 볼일 없는 날은 농장으로 나선다. 밭에 들어서면 바쁘다. 삭은 나뭇가지를 자른다.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 농약 뿌리는 날이다. 7~8월 한낮에 걸어만 다녀도 몸에 땀이 흐른다. 농약 방제복과 모자와 마스크를 쓰면 눈만 빼꼼히 보인다. 오전에 끝내려고 부지런히 한다. 기계가 고장 날 때는 오후까지 이어진다. 끝내고 나면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몸은 노곤하나 열매가 적당히 달려주기 은근히 소망한다. 과실을 수확해야 하는 농부 처지에선 수확량 감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해거리를 방지하고자 가지치기한다. 썩은 가지는 물론 복잡한 잔가지를 잘라 병충해를 막고 성장을 좋게 한다.


 해거리와 가지치기는 일과 쉼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양면의 지혜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멈추고 더 가득 채우기 위해 비움은 자연과 인간 모두의 지혜다. 땅도 지력을 많이 소모하는 작물을 재배한 뒤에는 반드시 이듬해 휴경으로 쉬게 한다. 농작물에 따라 연작을 하지 않고 다음 해 돌려짓기한다.


 산이나 관광지도 동식물 훼손과 보존 차원에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보호한다. 동물보호를 위해 수렵도 몇 년에 한 번씩 쉬고 허가해 준다. 이렇듯 주변에 쉼과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옛사람들은 삶을 즐기며 살았다. 물질보다 정신적 풍요로움에 가치를 두었다. 운치 좋은 곳에서 시를 읊으며, 그림을 그리고 강에 배를 띄워 풍류를 즐겼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현대인들은 차츰 여유라는 단어를 잃어버리고 있다. 속도 경쟁으로 성장과 결과만 중시하게 되었다. 물질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정신은 자꾸만 황폐해져 간다. 음악도 악보 사이에는 쉼표를 넣는다. 경쾌하고 빠른 곡도 쉼표는 필수 조건이다. 바이올린을 보관할 때 현을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끊어지게 마련이다. 움켜쥐려면 손을 펴야 하고, 잔을 채우려면 비워야 한다. 오래 살 부부간에도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졸혼을 뜻한다. 노년에 극단적 헤어짐을 선택하지 않고 부부 관계를 지속하면서 한 달에 두어 번 정기적 만남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일과 쉼도 역시 매한가지다. 얼핏 정반대 성질처럼 보이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다. 힘을 빼고 천천히 멈춘 상태가 쉼이다. 높은 성장을 위해 힘을 내고, 달리고 나면 반드시 힘을 빼야 한다. 귤나무에 가지치기하듯 성실한 농부에게 배워야 할 지혜다. 가지치기하는 농부의 마음은 지금 휑하게 잘린 텅 빈 가지에 있지 않다. 그들의 눈은 더 많은 열매가 달릴 미래의 나무를 꿈꾼다. 열심히 노동한 후,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나무의 수명을 늘리려면 해거리는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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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맘 2024-01-22 00:15:12
항상 삶의지혜를 배웁니다.
고맙슶니다~

소정아빠 2024-01-21 22:51:58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