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풍미한 문화예술공간, 시네마 파라다이스 인 제주
시대를 풍미한 문화예술공간, 시네마 파라다이스 인 제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팔도건축기행 (2) 제주 극장의 추억
제주 동문시장과 함께 나란히 들어선 '시네하우스' 건물 모습. 1965년 완공한 제주 최대 규모 영화관 '동양극장'은 '시네하우스'로 이름이 바뀐 후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제주 동문시장과 함께 나란히 들어선 '시네하우스' 건물 모습. 1965년 완공한 제주 최대 규모 영화관 '동양극장'은 '시네하우스'로 이름이 바뀐 후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사진=제주일보 고봉수 기자)

어떤 장소 또는 건축물이 한 사람의 추억이 되려면, 그곳에서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과거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장소도 건축물도 세월을 입어간다.

그 세월을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조차 없는 사람으로 나뉠 만큼 1960년대부터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영화를 상영하며 사람들에게 웃음과 울음을 선물했던 건축물은 이제 그 역할이나 장소의 의미가 잊혀지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제주의 문화예술 공간을 들여다보며 현재의 모습 속에서 과거의 의미를 찾아본다.

1982년 촬영된 '동양극장' 모습(제주시 제공)
1982년 촬영된 '동양극장' 모습(사진=제주시 제공)

▲ 1965년 완공 제주 최대 규모 영화관 ‘동양극장’

‘동양극장’은 1965년 세워진 제주 최대 규모의 영화관이다.

제주 동문시장과 함께 나란히 들어선 제주 최초의 복합문화건물이었다.

건물면적은 3690㎡로 본관은 2층이지만, 영화관 객석을 포함하면 지상 4층 규모다.

동양극장의 규모는 1200석이었다. 당시

제주극장이 475석, 대정읍의 상설극장이 350석, 대한극장이 598석, 삼일극장이 756석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대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35㎜ 신식 영사기 두 대를 설치하고 대규모 좌석을 갖춘 동양극장은 개관 당시 지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동양극장은 1990년(추정) 현대적 추세에 걸맞은 시설로 개보수되며 ‘시네하우스’로 명칭이 바뀐다.

관람석과 스크린 사이의 공간을 10m 이상 확대하고 좌석과 좌석 사이가 넓어졌다. 첨단 영상과 음향시설을 도입하고, 바닥에는 카펫이 깔렸다. 복도는 각종 전시회 개최가 가능하도록 밝은색의 벽돌과 석재로 마감했다. 이후 2000년 상영관을 2개로 증축하는 개보수를 했지만, 현재는 폐업한 상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극장은 이제 건물만 남아 추억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동양극장과 동문시장 일대 건축물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근현대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건축물의 큰 지붕은 역동적인 곡선으로 배의 앞머리를 닮았다. 지붕은 물결 모양을 반복하면서 멀리서 바라보면 건축물 자체가 한 척의 배를 떠오르게 설계됐다. (사진=제주일보 고봉수 기자)

▲파도치는 바다를 유영하는 한 척의 배

동양극장의 설계는 제주 출신 건축가 고(故) 김한섭 교수(1920-1990)가 맡았다.

1세대 현대 건축가로 꼽히는 김 교수는 화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송정공업중학교(전남 목포)와 일본의 대학에서 건축 전문교육을 받았다.

전남대 건축과 교수를 시작으로 홍익대와 중앙대 교수를 역임했다.

김 교수는 고향 제주에서 처음 설계한 동양극장 건축물에 모더니즘 양식과 낭만적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우선 건축물의 큰 지붕은 역동적인 곡선으로 배의 앞머리를 닮았다. 지붕은 물결 모양을 반복하면서 멀리서 바라보면 건축물 자체가 한 척의 배를 떠오르게 설계됐다.

극장 출입구 상부의 원형 아치는 파도를 상징하고, 천막을 쳐놓은 것처럼 돌출된 객석 부분은 바람을 맞는 돛대처럼 보인다. 오른쪽의 원형 창문은 여객선의 창문을 떠올리게 한다.

또 상부 영사실은 노련한 선장이 키를 잡고 바다를 응시하는 조타실을 구현한 듯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양극장은 전체적으로 파도가 물결치는 것을 닮아 제주다움에 대한 김 교수의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건축학계에서는 계단 창문까지 여객선의 원형 창을 도입하는 등 제주의 바다와 산지포구를 모티브로 낭만적으로 표현했다고 분석한다.

“제주 원도심의 당당한 랜드마크로 현재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라고 입을 모아 호평할 정도로 현대적이라는 평가다.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에 위치한 서귀포 관광극장 모습(서귀포시 제공)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에 위치한 서귀포 관광극장 모습(사진=서귀포시 제공)

▲1963년 서귀읍 최초의 극장 ‘서귀포 관광극장’

‘서귀포관광극장’이라는 허름하고 빛바랜 표지판을 보고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극장 입구에 들어서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운치 있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극장으로 들어서면 하늘로 열려 있는 야외극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150여 석의 나무 좌석과 군데군데 금이 가 있는 삼면의 시멘트벽, 그리고 그 벽을 장식하는 담쟁이덩굴이 무대까지 이어진다.

동절기를 제외한 3월~11월 매주 토요일 클래식과 대중음악 등 다양한 공연예술을 관람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귀포관광극장은 제주도 서귀포시 이중섭 문화의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서귀포관광극장은 1963년 개관 이후 오랫동안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가 열리면서 서귀포 시민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다. 2층 240평의 면적에 정원 667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1963년 1월 제주에 온 안익태 선생이 이곳을 찾아 직접 오르간을 빌려 연주 공연을 펼치기도 했고, 1965년 4월에는 대일굴욕외교반대특위 주최로 당시 민정당의 윤보선 총재를 비롯한 박순천, 윤제술, 김성용, 김수한씨 등이 이곳에서 한일회담 반대를 성토하기도 했다.

또한 당대 유명 가수들의 리사이틀이 잇따라 열렸는가 하면 벤허·쿼바디스 같은 명작도, 전설이 된 이소룡의 모습도, 디즈니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도, 로봇 태권브이도 이 공간에서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 1973년 6월 23일 오후 9시45분쯤 극영화 ‘여로’ 상영 중 화재 소동으로 관객 100여 명이 다치면서 무기한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뒤 문을 닫아야 했다. 방치됐던 서귀포관광극장은 2013년부터 본래의 외형을 살리고 낡은 지붕을 걷어내는 단장을 마친 후 이색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귀포 관광극장 벽면을 통해 미디어파사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서귀포시 제공)
서귀포 관광극장 벽면을 통해 미디어파사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사진=서귀포시 제공)

▲‘빛의 극장’ 미디어아트로 만나는 이중섭

서귀포관광극장이 ‘빛의 극장’으로 거듭나며 여행자들의 발길을 멈춰 세우고 있다.

서귀포시는 지난해 10월부터 극장 건물 외벽에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이중섭 화백의 삶과 작품들이 파노라마처럼 선보이고 있다.

단순히 작품을 나열해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해설을 덧붙인 미디어아트를 제작해 눈길을 끈다.

미디어아트 상영 길이는 7분 정도로 ‘조선의 들소’, ‘가족’, ‘환상’, ‘마지막 여정’, ‘유산’ 등 모두 5개의 주제로 이뤄졌다. 이중섭 화백의 작품 38점도 만나볼 수 있다.

미디어아트는 10월~3월에는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4~9월에는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연속 상영된다.

미디어아트는 이중섭 화백 관련 작품뿐만 아니라 앞으로 크리스마스, 새해맞이 등 특정 기념일을 표현한 콘텐츠도 추가로 선보여 시민과 여행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나갈 계획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