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여 살아온 75년...95세 제주4.3 생존희생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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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자식들에게 피해 갈까봐 70년 넘게 수형생활 숨겨
오는 2월 6일 부산 동아대 모의법정에서 직권재심 예정
합동수행단 “수형인 심신상태 고려해 출장 재판 예정”
수형인 명부에는 4ㆍ3사건 당시 군사재판에 회부돼 징역형을 언도받은 제주도민 2530명의 나이, 직업, 본적지, 항변, 판정(判定), 판결(判決) 언도(言渡)일자, 복역장소가 기재돼 있다. 직업을 보면 기자, 농부, 무직을 비롯해 학생과 부녀자도 있었다.
수형인 명부에는 4ㆍ3사건 당시 군사재판에 회부돼 징역형을 언도(선고)받은 제주도민 2530명의 나이, 직업, 본적지, 항변, 판정(判定), 판결(判決) 언도(言渡)일자, 복역장소가 기재돼 있다. 직업을 보면 기자, 농부, 무직을 비롯해 학생과 부녀자도 있었다.

제주4·3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도 숨죽여 살아온 95세 노인이 75년 만에 입을 열었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은 1949년 7월 육군 고등군법회의(군사재판)에서 국방경비법위반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A씨(95)에 대해 직권재심을 제주지방법원에 청구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4·3당시 군경 토벌대에 의해 불법 구금된 후 군사재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7년6개월 동안 수감됐다.

A씨는 좌익으로 몰려 7년 넘게 옥살이를 했지만, 가족들이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연좌제 굴레로 피해를 입을까봐 수형사실을 숨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수행단은 A씨의 진술을 청취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해 이 같은 수형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A씨가 고령인 점을 감안, 생존 중에 신속한 명예회복과 국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직권재심을 청구했다.

직권재심은 형사판결에 재심 사유가 발견된 경우 검사가 피고인을 대신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는 제도다.

현재 부산에 살고 있는 A씨는 피해 사실을 숨겨오면서 4·3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4·3특별법이 아닌 형사소송법에 의한 직권재심으로 무죄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합동수행단 관계자는 “부산에 거주하는 A씨는 앞을 잘 볼 수 없어서 재심 재판에 보호자 동행이 필요하다”며 “A씨의 심신상태를 고려해 오는 2월 6일 부산 동아대 모의법정에서 ‘출장 재판’으로 사실상 재심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합동수행단은 2022년 10월 A씨처럼 4·3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았던 생존 수형인인 박화춘씨(당시 95세·여)에 대해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직권재심을 청구했다. 제주지법은 같은 해 12월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 역시 1948년 군사재판에서 내란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지만, 가족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숨기며 살아왔고 제주4·3평화재단의 추가 진상 조사 과정에서 생존 수형인으로 확인됐다.

4·3특별법 개정에 따른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희생자는 지금까지 총 1351명이다. 구체적으로 1~45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1301명과 1~5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50명이다.

한편, 1999년 국가기록에서 발견된 수형인명부를 통해 1948년 12월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와 1949년 6~7월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형을 선고 받은 제주도민은 2530명이다.

이 가운데 1931명(76%)의 신원이 확인됐지만 나머지 599명은 이름 또는 본적이 달라서 인적사항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 이유는 수형인들이 연좌제로 가족들이 피해를 당할 것을 걱정해 수감된 이후 이명(異名)·아명(兒名)으로 이름을 쓰거나, 사실과 다른 본적을 기재했기 때문이다.

 

1999년 국가기록원에서 발굴된 4.3수형인 명부 표지.
1999년 국가기록원에서 발굴된 4.3수형인 명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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