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세대의 외로움은 보건정책의 우선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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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제주장수복지연구원장/논설위원

수선화가 전에 없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우리 집 마당가, 이웃집 담벼락에, 올레길 바닷가에도 만발하였다. 배추꽃과 어깨를 두르고서 하얗게 웃고 있는 금잔옥대 수선화가, 오늘은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전해줄 듯 유난스레 다정하다. ‘눈이 오면 강아지가 짖는다’는 우리 보목마을에는, 이제 봄기운이 완연하다. 수선화는 봄을 예고하는 사랑의 꽃이다. 아름다움, 희망, 기대, 용기, 강인함을 상징하는 꽃말답게 졸업생들 가슴에다 벅찬 미래를 안겨준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대정고을에서 생활하실 적에, 남다르게 매화보다 수선화를 귀애하셨다. ‘한 점 찬 마음처럼 늘어진 둥근 꽃,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준수하구나.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뜰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에서 진실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라는 시에는, 수선화를 향한 사랑이 한없이 그윽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수선화를 바라보시며 딴 소리를 하신다. “니는 무사 경 몰명진고 이(너는 왜 그렇게 당당하지 못하니)? 아명해도 이 늙은이를 닮은 모양이여...”라고. 왜 그러시나 싶은 마음에 어머니 자리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붉은 동백과 노란 배추꽃 사이에서 수선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허여멀건 얼굴이 기가 죽은 듯도 하고, 외로워도 보인다. 아…, 우리 어머니가 외로우시구나. 겨우내 움츠러든 어머니 마음속에서 외로움이 야금야금 자리를 넓혀 논 게다. 새해 들어 102세가 되셨으니, 마을에서도 교회에서도 최고령 외톨이다. “대포 부택이 어멍은 백 두설이나 됐잰 해라, 이!”라는 고향 얘기도 자취를 감췄다. ‘이젠 다 살아진 거 닮다….’는 혼잣말 속에서 어머니의 외로움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그런데 외로움은 어머니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제주장수복지연구원이 실시한 ‘서귀포시 노인 행복도 조사’에 의하면, ‘나는 외롭다’는 응답이 16%다. 슬프다, 우울하다, 화가 난다 등이 10% 미만인 점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수치다. 게다가 ‘보통’이라는 반응을 포함하면 40%에 달한다. 사실, 서귀포시노인회와 함께 수행한 노인대학생 대상 ‘장수의 비결’을 종합해 볼 때도, ‘일’이 긍정요인이라면 ‘외로움’은 부정요인을 대표한다. 어느 지역보다 씩씩하고 활기찬 제주도 할머니들도 외로움 앞에서는 기가 죽은 모습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란 저서에서, 외로움은 ‘몸과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기는 질병’으로 정의한다. 최근 들어 미국의 공중보건서비스단은,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이들은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29% 더 높고, 뇌졸중은 32%, 치매는 50% 더 많단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국내 1인 가구 5명 중 4명은 사회적 고립을 겪는 ‘고독사 위험군’에 속한다. 


최근 들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을 긴급한 세계보건위협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연결 위원회’를 발족했다. 일찌감치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한 영국에 이어 일본도 해당 대사를 임명하는 등 범국민적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장년층의 고독사 예방을 위해 인공지능 반려로봇을 도입하는 지자체들이 생겨나는 중이다. 제주도정도 외로움을 보건정책의 우선순위로 실시할 때다. 외로움만큼은 제주사회에서 노년의 문제가 되지 말아야 한다. 제주도의 노년세대는 4·3과 6·25, 보릿고개를 넘어서, 새마을과 밀감 산업을 이끌어 온 제주사의 주역이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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