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원팀, 철학의 빈곤과 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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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철, 수필가·농부

정치인에 대한 테러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상대방을 적으로, 악으로 규정하는 우리 사회 풍토가 만들어 낸 부산물이다. 나와 다르면 혐오하고 조롱한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집단은 선이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집단은 척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괴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다름. 우리 사회는, 세상은 다름 속에서 움직인다. 나와 다른 너, 한국과 다른 외국, 나와 다른 피부색, 우리와 다른 문화, 인간과 다른 반려동물. 우리는 모두가 다름과 함께 살고 있다.

다름이 존중 받지 못할 때, 인권이 무너지고, 갈등이 생겨나고,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는 것을 보아왔다.

2차 세계 대전 때, 선동의 대가 히틀러는 선동과 음모론을 통해 정권을 잡고, 다름을 배격하면서 학살을 저지른다. 자기만 옳고, 자기가 속한 그룹만이 선이고 정의라는 생각은 추잡한 욕망이면서 사회와 인류에 불행을 가져왔다.

다른 소리,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사회를, 기업을 건전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원동력이다. 요즘 정치권, 행정, 기업에서 “우리는 원팀”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나의 목표를 정해 이를 이루기 위해 원팀으로 움직이자는 것은 기성세대와 기득권의 논리이다. 소위 말하는 꼰대적인 발상이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과 소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목표의 품질과 성과가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원팀이라는 말은 철학의 빈곤을 의미한다. 원팀이 강조되고 같음을 강조할 때, 중앙 집중화가 이루어진다. 지방과 하위 조직은 소외된다.

원팀으로만 나아갈 때 추진 속도는 빠를지 모르지만, 결과는 최악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팀은 급격한 발전이 필요한 후진국에서 독재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논리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선진국이 됐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 행복한 세상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위에 기반한 원팀이라는 후진적인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 원팀이라는 용어는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이제는 원팀이 아닌 다름과 존중, 각자의 인권이 더욱 빛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다름을 존중하면, 차곡차곡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목표가 이루어진다.

정치에서는 나라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가, 행정에서는 도민 행복이라는 가치가 만들어 진다. 권위에 기반한 원팀은 독재자의 언어이면서 지배자의 언어이다. 다름을 통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행복, 인권, 민주주의, 공화주의,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의 공감과 신뢰, 즉 에토스를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미로 생각하였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름을 중요한 가치로 삼을 때, 서로를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

우리 사회의 품격을 위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를 위해, 다름이라는 가치가 우리의 중심에 있기를 희망한다.

다름을 통해 행복과 철학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고 싶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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