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찍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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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전, 작가·방송인

낭패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체크카드, 교통카드, 지하철 무료승차권, 연명 치료 거부 등록증, 현금 30만원, 명함이 들어있는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한 지인의 출판 기념회에서였다. 정치 지망생인 그가 이벤트로 치르는 행사라, 발 디딜 틈 없이 마구 붐비는 홀 입구에서 책을 사려고 지갑을 꺼낸 것 같은데 사람들에 떠밀리는 순간 지갑이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둘러보아도 지갑은 보이지 않고 군중이 꽉 들어찬 홀 안에서는 행사 시작을 알리는 난타 공연이 시작됐는지 북소리가 둥둥 울리며 ‘와’ 하는 함성이 동시에 일었다. 얼마 전에도 잃어버려서 모든 걸 다시 만드느라 곤욕을 치렀는데 또 잃어버리다니! 거짓말 조금 보태서 눈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왜 그러십니까? 뭘 잃어버리셨나요?” 행사 안내 명찰을 단 사람이었는데, 변호사인 지인의 사무실에서 지원을 나온 듯했다.

“지갑을 잃어버렸소이다. 들어올 때만 해도 있었는데….”

그러자 그 사람이 재빨리 판매대로 가서 판매원에게 질문도 하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더니 “여기에는 없는데 제가 안에 가서 혹시 습득한 분이 있는지 끝까지 찾아보겠습니다.”란다. 그러나 계속 들이닥치는 지지자들은 물론, 국회의원, 시장, 군수, 기업가 등 난다긴다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를 보면서 언감생심 이 아수라장 같은 행사장에서 무슨 수로 지갑을 찾을 것인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 없는 일개 서민을 위해서 말이라도 그렇게 해준 것이 고마워 감사를 표한 뒤 점심을 먹었던 식당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혹시나 계산대에 두었나 해서였다. 그러나 역시 헛수고였다. 맥이 빠진 채로 카드 분실 신고를 막 하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바로 그 안내자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지갑을 찾았다는 것이다. 행사 중간, 중간에 마이크를 붙잡고 여러번 공지했더니 ‘여기요’하고 습득자가 나선 것이다. 그렇게 기적처럼 지갑을 찾은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맹상군 생각이 났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인 맹상군에게는 3000의 식객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에 풍환이란 인물이 있었다. 한번은 풍환이 맹상군의 식읍(食邑)에 가서 빚을 받아 오라는 명을 받았다. 그런데 식읍에 도착해보니 빚진 백성들이 가난해서 도저히 빚을 갚을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자 풍환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차용증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빚을 면제해 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맹상군이 크게 화를 냈는데 정작 풍환은 “주군에게 돈보다 더 좋은 것이 들어 올 것입니다.” 하고 태연자약했다. 과연 얼마 안 있어 맹상군은 백성들로부터 빚을 탕감해 준 훌륭한 인물이라는 칭송이 자자했다.

사실 지인이라고 하나 대학 동문일 뿐이니 그를 얼마나 깊이 알 것인가? 그러나 끝까지 약속을 지킨 그 안내자로 인해서 지인을 다시 보게 됐다. 선거 때만 되면 자기 찍어달라고들 떠들어대는데 모름지기 당사자의 말로 가늠할 게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을 데리고 일하는지를 보고 판단할 일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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