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逸脫), 그 아름다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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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삶이란 것이 언제나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죠.”

Life isn't always what one like. 미국 의회도서관에 영구 보존될 정도로 유명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명대사이다. 조 브레들리가 왕실의 통제된 삶 속에서 일탈을 꿈꾸는 앤 공주를 달래듯 하며 하는 이 대사는 고도로 문명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는 명대사는 아닐까?

오래전 본 적이 있지만 큰 울림은 없었던 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최근 재감상했다. 7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흑백 화면 속에 보이는 스페인 광장이 26년 전 이탈리아에서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오드리 헵번이 젤라또를 먹음으로써 더 유명해진 스페인 광장. 26년 전으로 돌아가 13번째 계단에서 젤라또를 먹는 공상에 잠기니 묘한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아쉽게도 난 오드리 헵번이 앉아 있던 계단에 서서 스페인 광장과 명품 거리에 모인 엄청난 인파를 바라본 기억밖에 없다. 명장면 명대사와 함께 로마의 휴일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오늘이다.

그렇다. 삶이 언제나 자기 뜻대로만 된다고 한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우리네 삶엔 꽃길보다 험난한 길이 더 많기에 삶은 더 가치로울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앤 공주가 일탈을 꿈꾼 건 바로 험난한 길을 걷고 난 후 삶을 더 윤택하게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일탈을 꿈꾸는 자, 삶을 즐길 자격이 있지 않을까? 현대인들이 고단하고 힘든 삶에 치여 한 번씩은 일탈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칠순이 지난 나도 매일 일탈을 꿈꾼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지쳐 오열(嗚咽)하게 될 땐 어쩌면 그게 유일한 희망인 양 집착하는 것을 보면 내가 유아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스페인 광장에서의 추억이 그립다.

스페인 광장에서 젤라또를 먹던 그 오드리 헵번과 함께 통제된 삶 속에서 일탈을 꿈꿨던 영화 속 앤 공주도 이제 역사 속 인물이 되었다. 그녀는 왕실과 조국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잠시나마 일탈을 즐기며 서민들 생활을 보았고 그래서 더 성숙한 공주로 다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일탈을 끝내고 오드리 헵번이 다시 궁으로 돌아간 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왕실과 조국에 대한 의무를 잊고 있었다면 오늘 밤 전 돌아오지 않았을거에요.”

그렇다. 앤 공주가 현대인들에게 일탈을 꿈꿔야 하는 당위성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하기에 한 번쯤의 일탈은 우리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곧 설이다.

입춘(立春)도 지나고 입춘굿으로 한해 무사 안녕도 빌었으니 이제 서서히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갑진년 새해 힘찬 출발을 위한 당신의 계획에 일탈이 섞여 있다면 그건 더 나은 나와 내일을 위한 꿈의 선물이라 말하고 싶다.

갑진년 청룡의 해 승천하는 꿈을 꾸지는 못하더라도 가족과 이웃 내 모든 삶에 충만한 행복으로 채우기 위해 앤 공주처럼 아니 오드리 헵번처럼 로마에서의 일탈을 꿈꿔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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