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해장국이 생각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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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폭설로 온 섬이 꽁꽁 얼었다. 날씨도 춥고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이 생각나, 점심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해장국집을 가기로 했다. 유리창이 부옇게 흐린 문을 열고 들어섰다. 빈자리 없이 꽉 찼다. 늙수그레한 남자가 막걸리 한 대접을 받아 놓고, 고개를 숙인 채 숟가락질에만 분주하다. 노동일을 하는 듯한 부스스한 머리에 불콰한 얼굴의 남성은 많이 지쳐 보인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뚝배기에, 한 공기의 밥과 시큼한 깍두기 한 접시. 이 차림만으로도 든든한 한끼 요기가 된다. 전날 술기운으로 거북한 속을 풀기 위해 새벽에 먹는 술국이라 불렀다. 야간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겐 허한 속을 달래려면 아침에 이만한 음식이 없다. 가격도 저렴하거니와 양도 푸짐하다. 우거지며 시래기에 소, 돼지의 머릿고기와 부산물을 듬뿍 넣어 영양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해장국은 서민이 두루 즐기는 대표적 음식이다. 과거에는 남성들이 주로 먹었지만, 요즈음엔 남녀 누구나 가리지 않는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거나 춥고 배고픈 이에게 따뜻한 포만감을 선사한다. 한끼의 뜨끈한 국물은 고달픈 일상을 잠시 달래 줄 위로의 음식이 될 수 있다. 걸쭉한 건더기에 삶의 고단한 응어리가 녹아내린다. 속이 든든하면 시름도 잠시 물릴 만하다.

막걸리와 어울리는 소박한 음식이 해장국이다. 종업원의 시중을 받으며 고급주를 곁들여 최고의 맛을 음미하는 것과는 달리 격의 없다.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숟가락질한다고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허름한 가게는 인심이 좋을 것 같은 주인이 떠오른다. 해장국집이 번듯한 건물이라면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모르는 이와도 스스럼없이 몇 마디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해장국은 추운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장에 갔던 기억 속에 국밥집이 있다. 국물이 넘칠 듯 받아 든 뚝배기를 좌판에 놓고, 할아버지께서 후후 불어 입에 떠 넣어주시던 맛을 잊을 수 없다. 지방에 따라 그 지역 농산물이 주재료가 된다. 장날 시장통에서 가마솥을 걸어 놓고 둘러앉아 장작불에 언 손을 녹이며 먹던 국밥. 벌건 국물에 선지와 돼지고기 비계가 둥둥 떠 있던, 고기가 귀하던 시절에는 비계마저 입맛을 다시게 하지 않았던가.

최근 어느 지역에선 공깃밥이 3000원으로 올랐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후덕한 주인이 양이 부족한는 손님에게 밥을 고봉으로 퍼주던 인정은 옛 얘기가 될 것 같다. 물가가 오른 만큼 음식값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밥값을 주머니 사정과 흥정해야 하는 사람에겐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이는 점심이 그날의 첫 끼니다. 오른 점심값으로 앞으로 살아갈 일이 더 어렵겠다는 어느 젊은이의 하소연을 무심히 들을 수가 없다.

상인은 상인대로 손님은 손님대로 걱정이 늘어난다. 각자 생활이 바빠 가족끼리 함께 집밥 먹는 일도 드물다. 외식비가 많이 올라 오붓하게 외식을 즐길 기회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은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싸고 푸짐한 한끼가 절실할 것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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