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리
장도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장도리를 제주 방언으로 ‘못빼기’ 또는 ‘마치’라 한다. 목공들 사이엔 어떤지 몰라도 항간에서 장도리라고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 못을 빼고 박는 목공구인데, 목공일은 못의 크고 길고 굵음에 따라 빼고 박기가 힘든 일이고 거칠다. 팔힘 좋은 남정네가 주로 목공일을 하며 쓰지 부녀자에겐 소용이 많이 닿지 않는다.

망치 한쪽 머리에 못뽑이가 있으면 장도리다. 손잡이와 머리 두 곳이 유용하게 쓰이며, 무게의 대부분이 머리 쪽에 치우쳐 있다. 기본적으로 한 손에 잡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쇠로 만든 몸통에 쇠 또는 나무로 된 자루를 박은 것이다. 한쪽은 원기둥 또는 사각기둥 꼴, 그 끝은 못을 박기 좋게 평평하게 돼 있으며, 다른 한쪽은 끝이 갈라져 노루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갈라진 틈에 못을 물려 뽑는다. 이때 장도리는 지렛대 같은 구실을 하므로 큰 못도 뽑을 수 있다. 복잡한 구조가 아니나, 그리 크지 않은 도구가 용케 지렛대 구실을 하는 게 야무지다. 어쨌든 목공 분야라 장도리는 남자가 사용하는 것이지 여자가 쓰는 연장은 아니다.

고여생 여류수필가(본보 논단 필진)가 작품 해설을 의뢰해 온 원고를 받고 놀랐다. 표제가 ‘어머니의 장도리’이니, 분명 필자의 어머니와 장도리에 얽힌 서사겠구나 싶은 느낌이 왔다.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애잔하다. 어머니의 장도리, 얼마나 손때가 묻었으면 이리도 매끄럽고 윤이 날까 싶다. 어머니의 체취를 느끼려 장도리 손잡이를 잡는다. 별이 차가운 밤, 방금 구워낸 고구마를 품에 안은 느낌이다. 차가운 듯하면서도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진다. 어머니는 늘 이 장도리로 묵은 때를 걷어 내 새 생명으로 부활시켰다. 떨어진 문고리를 붙이고 헐거워진 나무 의자를 살려냈다. 어느 날엔 흰 경첩을 떼어내고 새 경첩을 달아 깔끔하게 문짝을 정리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흔적을 곱게 종이에 싸 공구함 한쪽에 넣어 둔다. (중략) 야윈 등에 짊어진 눈물진 삶을 못질하며 곧추세웠디. 어머니에게 못을 박는 일은 마음속에 응어리를 심는 게 아니라 마음속 응어리를 캐는 다짐이고 결심이었다. 허기진 삶 속에서도 마음의 풍요를 꿈꾸는 버팀목이었다. 그렿게 당신을 채찍질하며 스스로를 이겨냈다.」 - 고여생의 ’어머니의 장도리’ 중 부분.

다음은 김길웅의 작품 해설이다.

「장도리는 가장의 빈자리를 채워준 집안의 버팀목, 헐뜯어진 것들을 수선해 생광케 하는 부활의 날갯짓, 절망을 꿈으로 치환하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고여생은 어머니의 장도리를 깊숙이 흉중에 안았고, 어머니처럼 마음속에 품어왔고, 영혼으로 자신의 정신 속에 살아 숨 쉰다. 고여생이 등단 후 15년간, 북돋워 온 수필 밭이 얼마나 기름진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묘사가 정교‧치밀해 이 작품의 품격을 한 켜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들뢰즈는 “예술은 작동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탈주선을 탄 언어의 항해사란 얘기다. 그것을 실천하는 작가만이 수필을 문학답게 만들어 갈 것이다.

행간으로 넘치는 작가의 에스프리—혼과 마음과 정신을 음미할 일이다. 가위 표제작답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