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읽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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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숙, 세화중학교 교감·수필가

아이들의 눈높이가 지니는 힘은 어떤 것일까.

책장을 정리하다가 낯익은 작가의 동화를 펼쳐 들었다. 동화를 읽어 본 적이 없어서인지 색다른 경험이었다. 동화 속의 어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동화는 한부모 가정이 겪는 어려움으로 시작됐다. 시골집 할머니에게 맡겨지면서 아이는 부모에게 버림당했다는 생각으로 매사에 삐딱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가끔 먹이를 찾아 앞마당에 나타나는 어미 고양이가 온 힘을 다해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을 보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의심했던 마음은 눈 녹듯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신이 버려진 게 아니라며, 스스로 다독인다.

아이의 잘못은 분명 아닐 텐데, 안타깝다. 초조하게 부모의 전화를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에선 목울대까지 뜨거운 감정이 차오른다. 아이의 절망이 끝나는 지점엔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절망의 끝엔 또 다른 밝음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아이를 위해 품어본다.

동화 속의 아이가 주는 선물이었을까. 어릴 적 추억이 손짓한다. 잠시 아이가 됐다. 어머니와 함께하던 따뜻한 봄날이었다. 밭일 나가는 어머니를 따라나선 것도 모자라 근처 밭 모퉁이에서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나 보다. 찾지 못해 한참 애간장을 태웠던 걸까. 아무 데서나 누워 잔다며 눈이 빨개지도록 혼쭐나기도 했다.

어둠이 깔리는 줄도 모르고 밤늦게 무리 지어 돌아다니다가 어른들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은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밤에 동네를 돌아다니면 이마에 뿔 달린 도깨비가 나타난다며 어찌나 겁을 줬는지. 밤새 도깨비에게 목 졸리는 꿈을 꾸며 이불에 세계지도를 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도 어른들은 동화 속에서처럼 한결같이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악역이었나 보다.

동화는 동심을 들여다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소홀히 했던 나의 내면아이를 만나게 했다. 동심과 함께 유기됐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해결해야 진정한 어른이 되지 않겠는가. 동화를 읽으면서 내면아이를 찾아 실컷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드러나지 않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도 보고 싶은 것만 봤던 건 아닐까. 어른이 동화 속의 아이처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어른의 눈높이를 앞세워 알게 모르게 아이의 목을 죄는 건 아닌지 동화를 읽고서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교사는 아이들의 다양한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꿈을 돋우는 역할을 해야 하니 더더욱 눈높이를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어른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아직도 갖춰야 할 게 많다. 동화를 읽으면서 동심의 세계를 좀 더 더듬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왕이면 동화 속의 아이와 같은 눈높이를 가진, 때로는 엄하기도 하고 봄볕처럼 부드럽기도 한 능청스러운 어른으로 말이다.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를 가진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유쾌한 일이다. 어른이 동화를 읽어야 하는 까닭이 이 때문이지 않을까. 황홀한 것도 아니고 종교도 아닌 게, 그저 생각이 맑아지는 것이다. 동화를 읽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이 영 빈말은 아닌가 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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