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삶의 여정 함께한 1만8000 토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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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신과 함께 살아온 제주사람들

신구간에 평소 금기시되는 일들 해야 한 해가 무탈

입춘굿, 일제강점기에 사라졌지만 1999년에 복원

제주도는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섬이지만 예로부터 바람과 비, 태풍이 많은 곳이다. 양날의 검처럼 아름답지만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제주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돌무지 땅을 일궈야 했고 바다로 나가야 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기댈 곳은 신의 영역이었으리라. 이런 연유로 어느 지역보다 무속이 성행했다. 인간세상을 관장하는 토속신들 무려 1만8000이란 숫자가 상징하듯 일상에서 늘 ‘신과 함께’ 지내왔다. 생존을 위해 수백 년을 이어온 민간신앙을 세속의 기준으로 단순히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제주도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준 신들은 한해의 임무를 마치면 하늘로 올라가 다른 신들과 임무를 교대하기도 한다. 1만8000 신들이 자리를 비우는 유일한 기간이다. 24절기 가운데 큰 추위라는 대한(大寒) 후 4일부터 봄의 서막을 알리는 입춘(立春) 전 3일까지의 8일 동안이다. 제주에서는 이 기간을 ‘신구간(新舊間)’이라 하여, 신이 두려워서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하느라 손이 바빠진다. 


▲신들이 자리를 비우는 ‘신구간’


‘묵은 철과 새 철 사이’라는 뜻의 신구간은 지상에 내려와 인간사를 다루는 제주의 신들(舊官)이 한 해 임무를 다하고 하늘로 올라가서 신관(新官)이 다시 내려오기 전까지 인간사를 관장하는 신이 없는 기간을 의미한다. 이는 육지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세시풍습으로, 이 기간에는 1년 동안 신이 두려워서 못했던 일들인 이사나 집수리 등을 해도 아무 탈이 없다는 속신(俗信)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의 민속학자들은 신구간의 유래를 다음의 ‘세관교승(歲官交承)’에서 대체로 찾는다. 다음은 윤용택 교수의 논문 ‘제주도 신구간 풍속의 유래에 대한 고찰’에서 일부 인용한 내용이다.


‘세관교승’의 내용은 조선후기 관청과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도참서(圖讖書)인 ‘천기대요(天機大要)’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대한 후 10일, 입춘 전 5일인데, 다만 그 하루가 상길(上吉)이 되고, 그 전 1일과 후 1일이 차길(次吉)이 된다. 이 날은 구신(舊神)은 막 떠나고 신신(新神)은 아직 오지 않은 때이다. 이것은 곧 1년 중의 공망(空亡)일인 까닭에 연월일시를 세지 않으며, 상극(相剋)이라 하더라도 모든 일에 거리낄 것이 없다. 


다만 길성(吉星)이 와서 도와주지 않으니, 5일 내에 일을 마치는 것이 좋다.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2일은 곧 신세관(新歲官)과 구세관(舊歲官)이 교승하는 때이다. 입춘일을 범하지 말고, 반드시 황도일(黃道日)과 흑도일(黑道日)을 가려서, 먼저 조상의 신주에게 길(吉)한 방향으로 피해서 나가도록 청해야 한다. 이때에는 산운(山運)에도 거리낌이 없어 길흉살에 이르기까지 극복되므로, 임의대로 가택을 짓고 장사를 지내도 불리함이 없다’


신구간은 신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시기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금기시되는 일들을 이 시기에 해야 동티(動土)가 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동티란 신을 화나게 하여 재앙이 생기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주로 몸에 아픈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를 두렵게 여기던 사람들은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서 신구간을 통해 조심스럽게 일을 치르는 것이다. 신에 의지하며 신과 함께 지내다가, 신의 간섭을 받지 않는 신들의 부재 기간에 집을 고치고, 이사를 가고, 정갈한 마음으로 한 해를 관장할 새로운 신들을 즐겁게 맞이하는 제주 사람들. 한 해의 마지막과 첫 절기 사이인 신구간은 신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숨고르기 의식과도 같은 것이리라. 

▲탐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입춘굿’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1년을 나눠 계절을 구분한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가 바로 입춘이다. 새해의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제주사람들은 이날을 ‘새철 드는 날’ 또는 ‘샛절 드는 날’이라 불렀다. 따뜻한 남쪽에 있는 섬이라고는 하지만, 매서운 바람이 더해지는 제주의 겨울은 몸을 잔뜩 웅크리게 만든다.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추위 속에서도 봄을 알리는 ‘입춘(立春·2월 4일)’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 생명이 움트는 신선한 공기가 제주섬을 감싼다. 


신구간이 끝난 뒤 하늘로 올라갔던 신들이 다시 지상에 내려오면 새해 첫 절기인 입춘이 시작된다. 입춘 날이 되면 한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여러 가지 의례가 행해진다. 제주에서는 새철(입춘)이 들기 전에 이웃에서 빌려온 물건도 돌려주고 꿔온 돈도 갚고, 입춘첩을 붙이고 입춘굿을 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입춘첩은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인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등의 글귀를 써서 각 가정의 대문, 고팡문, 기둥 등에 붙인다. 그해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와 관련된 제주의 입춘굿은 심방(무당)들이 치르는 무속굿을 중심으로 모든 의례가 진행된다.


입춘굿은 ‘춘경(春耕)’ 또는 ‘입춘춘경(立春春耕)’이라 하며 ‘춘경친다’고 한다. 입춘굿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이원조(李源祚)가 제주방어사로 부임하여 헌종 7년(1841)에 쓴 탐라록(耽羅錄) ‘입춘일념운(立春日拈韻)’에 있다. “24일 입춘날 호장은 관복을 갖추고 나무로 만든 소가 끄는 쟁기를 잡고 가면 양쪽에 어린 기생이 부채를 들고 흔든다. 이를 ‘퇴우(退牛)’, 즉, ‘낭쉐몰이(소몰이)’라 한다. 심방 무리들은 활기차게 북을 치며 앞에서 인도하는데 먼저 객사로부터 차례로 관덕정 마당으로 들어와서 ‘밭을 가는 모양’을 흉내 내었다. 이날은 본 관아에서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이것은 탐라왕이 ‘적전’하는 풍속이 이어져 내려온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 기록을 통해 민(民)을 대표하는 호장이 앞에 서면 제의를 주관하는 심방이 연희를 통해 흥을 돋우고 관에서는 장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민(民)·관(官)·무(巫)가 하나가 된 행사임을 알 수 있다. 이 입춘굿이 고대 탐라국 이후 이어져 왔다는 것은 제주도에서도 농사가 생업의 근본이었음을 의미한다.


탐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입춘굿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다가 지난 1999년 제주민예총이 전통문화축제로 복원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입춘굿은 탐라왕조가 생겨난 과정이 펼쳐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제주의 굿은 ‘초감제’로 시작하는데, 1만8000 신들을 굿판에 모시는 의례다. 올해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이용옥 심방, 제주큰굿보존회 서순실 심방, 영감놀이보존회 오춘옥 심방 등 제주를 대표하는 보존회 3곳의 큰 어른들이 처음으로 입춘 행사에 함께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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