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유해 2구 가족 품에…정부 전폭 지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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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희생된 제주4·3희생자 유해 2구가 암매장당한 지 75년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20일 4·3평화교육센터에서 고(故) 이한성씨와 고(故) 강문후씨의 유해를 유가족들에게 인계했다.


제주4·3희생자 유가족 모두가 뼈에 사무치는 한(恨)을 가슴에 품고 7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뎌왔지만 이날 작은형(고 이한성씨)의 유해를 마주한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장(85)의 감회는 남달랐다.


이 회장에 따르면 고인은 1947년 3·1절 행사에서 신탁통치와 친일파 인사 등용 반대 운동을 했다가 4·3이 발생하자 피신 생활을 했는데 1949년 봄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전단지를 보고 자수했다. 하지만 고인은 그해 6월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제주공항에 끌려간 후 행방불명됐다.


고인은 2007~2009년 실시한 제주공항 활주로 주변 유해발굴사업에서 유골이 발견됐고, 이 회장이 지난해 10월 세계제주인대회 참석차 제주를 방문했다가 유가족 채혈에 참여함으로써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이 회장 가족의 수난은 작은형에 그치지 않았다. 그가 군경에 쫒기자 어머니와 누나가 도피자 가족으로 낙인찍혀 토벌대에 학살됐고, 큰형은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 행방불명된 됐다. 그야말로 한 가족이 송두리째 4·3 광풍에 원통하게 희생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한국 정부가 행방불명된 큰형과 작은형에 대해 최근 재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고 제주4·3의 역사를 바로잡아줬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제주도가 2006년부터 4·3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후 현재까지 총 413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나 유전자 감식을 통해 희생자 신원이 확인된 것은 144명에 그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전담 기구를 설립,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4·3희생자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 사업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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