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의 항일 역사 이제는 인정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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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만난 임도현 항일 비행사 조카 임정범씨
임도현 항일 비행사의 조카 임정범씨.
고(故) 임도현 항일 비행사의 조카 임정범씨.

“1999년부터 총 11번의 국가유공자 신청에도 나라에서는 전혀 대답이 없습니다. 큰아버지의 항일 역사를 이제는 인정해주길 바랍니다.”

고(故) 임도현 항일 비행사의 조카 임정범씨를 28일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임도현항일비행사기념관에서 만났다.

임씨는 육군3사관학교를 나와 소위로 임관한 1977년부터 큰아버지의 행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료가 전혀 없었지만, 어머니가 남기곤 간 궤에서 우연히 큰아버지의 자필 이력서를 발견한 이후 이를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1990년 소령으로 전역해 제주로 내려왔다. 세화고등학고, 제주제일고, 제주여상 등에서 근무하며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1999년 제주보훈청에 처음으로 큰아버지 임도현의 국가유공자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료부족으로 인해 선정되지 못했다’는 답변을 받아들고, 중국, 일본 등을 오가며 자료 찾기에 집중했다. 2003년에는 국가기록원에서 큰아버지에 대한 판결문을 찾아 2004년 당시 서울에 있는 보훈부로 직접 찾아가 원본을 제출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 역시 ‘탈락’이었다.

2011년 사비를 털어 ‘임도현 항일자료 기념관’을 세워, 그동안의 자료를 정리하고 알려나가는 일에 매진하던 중 2019년 오영훈 제주도지사(당시 국회의원)가 입수한 임도현과 관련한 보훈처의 심사자료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당시 자료를 보고 피눈물을 흘렸다”는 임씨는 “꾸준히 자료를 보완해가며 신청했던 자료가 모두 누락된 것을 확인했다. 아마도 제출한 자료들은 폄훼되어 쓰레기통으로 갔다고 본다. 솔직히 지금 세대에게 전쟁이 나면 싸우지 말고 도망가라고 말하고 싶다”고 울분을 토했다.

열한 차례의 국가유공자 심사에 명확한 이유 없이 ‘탈락’이라는 답변을 받아는 임씨는 “이번 정부 들어서도 대통령실로 수십 차례 등기 우편을 보냈고, 국가보훈부로 청원도 했다”며 “올해 일흔인 내가 어느덧 50년 가까운 세월을 큰아버지에 천착하고 있다. 이제는 나라에서 큰아버지의 공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 주고, 제대로 심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출신인 임도현 비행사(1909~1952)는 1931년 일본 도쿄 다치카와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을 받던 중 뜻을 같이한 동료 7명과 비행기를 몰고 1780㎞를 날아 중국 상하이로 탈출했다. 이어 류저우(柳州)육군항공학교, 육·해군대학 등을 수학한 후 중위로 임관해 쓰촨성 중경중앙군사정부 부대에 배치돼 중·일 전쟁에 참전했다. 만주 국경에서 전투 중 오른쪽 눈썹 위 두개골이 부서지는 큰 부상을 입고, 일본군에 체포됐다. 탈출해 와흘리로 돌아왔지만 1936년 다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52년 43세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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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자 그분들을 2024-02-29 19:21:59
지역 방송국에서 드라마라도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