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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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가까이 있는 집이나 사람을 이웃 또는 이웃사촌이라 한다. 한자어로 선린(善隣) 또는 근린(近隣)도 같은 의미로 곧잘 쓰는 말이다. 사회적 거리의 가까움을 나타내는 다정다감한 말로 다가온다. 이웃, 선린, 근린 참 훈훈하고 따스한 말들이다. 다 덜어내고 ‘옆집 사람’이라 말하면, 더 거리가 좁혀진다. 얼마나 가깝고 임의로운가.

이사를 오게 되면, 이웃집에 시루떡을 나눠주는 문화가 있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 ‘이웃끼리는 황소 가지고도 다투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엔 그만큼 이웃의 비중이 높았었다. 한데 오늘의 이웃은 좋은 관계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적대시 대상이다. 사람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안타까운 얘기다.

특히 도시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 등으로 갈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살인 사태로까지 이어지는 게 요즘 세태이니, 끔찍하다. 시루떡을 돌리기는커녕 서로간에 인사도 잘하지 않는다. 옆집에 누가 죽든 살든 무관심할 정도로 단절돼 있다. “장기기증자의 이웃사랑과 희생정신은 언제나 존중돼야 한다.”고, 이 대목은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

‘삼이웃’이란 말이 있다. 이쪽저쪽의 가까운 이웃을 일컫는 말로, 손익을 떠나서 살갑고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이웃의 삼은 ‘삼(三)’이니, 곧 세 이웃이 된다. 특정한 이웃이 아니라 가까운 여러 이웃을 통틀어 하는 말이다. 아파트의 경우, 이쪽저쪽으로 다른 세대가 이웃 지어 있다. 모두를 합쳐서 삼이웃이라 부르는 것이다.

아파트에 이사와 삼 년 차가 됐지만, 낯설다. 읍내에 오래 살아 몸에 밴 이웃 간의 정겨움이 없어서인지 무언가 까칠하고 미흡하고 쓸쓸하다. 엘리베이터 라인의 좌우 30세대와도 낯이 익숙지 않다. 주민인지 외부인인지도 분간이 서질 않아 만나면 가벼운 목례로 지나칠 뿐,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주춤하게 지내고 있다. 워낙 단지가 커 그렇겠지만, 이건 아파트가 지닌 생리현상이면서 한계다.

읍내에서 소박한 사람들과 이웃해 서른 해를 살았었다. 이웃 간의 관계는 아무래도 여자 쪽이 훨씬 더 도타운 것이라, 허전해하는 게 아내다. 드나들 이웃집이 없다. 여든의 나이로 누굴 새로 사귀는 것도 생각할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망설이다 또 시작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원칙을 세워놓고 나니, 되려 홀가분하다. 한 몸 허물없이 지내야지, 자칫 남에게 피해를 줘서야 될 일인가.

엊그제 읍내에서 정답게 지내던 이웃 아주머니가 인편에 메밀가루를 보내왔다. 비닐봉지가 듬직하다. 산전(山田)에서 몸소 거둬들인 것임을 익히 안다. 참 각별했다. 동네를 떠나올 때 게발선인장 화분을 이삿짐 차에 선뜻 올렸던 분이다.

“언니, 선생님 좋아하는 메밀수제비 해 드리세요.” 아내에게 전화까지 왔더란다. 이런 고마울 데가, 주고받던 옛정이 되살아나 콧잔등이 시큰했다. 그새 두 세 번 수제비를 해 먹었다. 오랜만이라 여간한 맛이 아니었다. 내가 쩝쩝 소리 내며 게걸스레 먹는 걸 보며, 아내는 옛 이웃과의 추억을 떠올렸으리라.

진분홍 게발선인장꽃이 활짝 피었다. 옛 주인의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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