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AURA)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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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요즘 정치 쪽을 보노라면 말이 안 나온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간 오가는 깜도 안되는 말들로 난장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금도(襟度)가 실종된 것은 물론, 말이 머금어야 할 최소의 품위조차 없다. 상대를 곤경에 몰아넣는 게 최선이고, 저가 사는 길이라고 작심한 사람들 같다. 선거가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해 눈앞의 먹잇감을 놓칠라 덤벼드는 형국이다. 정글의 하이에나 떼를 연상케 한다.

시국을 보며 횡설수설한다.

말 중에 가장 치졸한 게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 본질에서 이탈해 감정 싸움으로 비화할 수 있어서다. 집권당이라 눈이 먼저 여 쪽으로 간다.

“후보 공천이 시스템에 의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아 사천하고 있다. 그러니 공천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탈당하는 사태가 나오는 게 아니냐. 우릴 보아라, 공천이 시스템에 의해 공정하게 이뤄져 반발이 전혀 없지 않으냐. 쇄신도 없고, 감동도 없다지만 공천을 조용히 이뤄내고 있다. 야당 심사 과정에서 그분이 0점을 받았다면 대표는 ‘-200점’이다.”

상대를 힐난한다. 이건 막말이다.

야에서 탈당한 이를 여의 대표가 찾아가 입당 권유해 성사시킨 선례를 만들었다. 좋은 풍경이 아니다. 왜 남의 당 공천에 시시비비하는 걸까. 가타부타 너무 나아간 거 아닌가. 사욕이다. 공천이 불공정해 대표가 당을 사당화하고 있다. 복잡한 기류 속에 내홍을 겪던 야의 대표가 “우리의 공천이 혁신적이었다, 공천 혁명이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쯤 되면 우리의 정치는 소극(笑劇)이다. 다 저들이 잘했다 우기며, 거침없는 말에 데면데면한 표정, 아전인수의 극치다.

이런 연출도 있었다. 여의 대표가 언론 앞에서 현란한 입담을 과시하다 장관 출신을 끌어안으며 야 대표 지역구에 자객을 배치하겠다고 공언한다. 공천위를 거친 거며, 자객(刺客)이란 표현은 무언가. 상대 후보를 이기기 위해 특정 후보를 맞붙게 하는 거라지만,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는 것 같아 끔찍했다. 장관 출신 화답에 또 한 번 움찔했다.

“돌멩이를 치우겠습니다.”

돌멩이? 조악한 언사다. 야당 대표는 총명하고 지칠 줄 모르는 투사형으로 가는 곳마다 그를 환호한다. 허나 자신을 너무 과신해 앞서가는 것 같다. 왜일까. 팔순 늙은이의 눈엔 아슬아슬해 보인다.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서려 있는 특별한 기운, 후광이나 광채를 ‘아우라’라 한다. 껍데기가 아닌, 내면의 빛이다. 화장하거나 치장으로는 만들 수 없다. 내면의 결곡하고 초긍정적인 기운이 빛으로, 카리스마로 연출될 때, 비로소 아우라가 나타난다. 한 사람의 아우라가 전설을 만든다.

분명,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아우라가 있는 사람은 폭포 아래서 도를 닦거나 그런 별난 짓을 벌이지 않아도 전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아무리 살피고 뒤적여 보지만 이 늙은이의 눈엔 이 나라 정치인들에게 아우라가 없다. 아우라는 욕심을 낸다고 되지 않는다. 달변가도 아니다. 일거수일투족에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나라 안에 난세를 건질 아우라가 없어 아쉽다.

총선 뒤가 심각할 것 같다. 문제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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