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와 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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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1980년대 중반.


대학교 교정을 들어설 때, 혹은 나올 때 울려 퍼지던 들국화 전인권의 ‘행진’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난 노래할 거야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당시는 민정당(민주정의당) 전두환의 독재가 한창일 때.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학생들도 행진을 할 때였고, 시위를 막기 위해 나선 경찰도 행진을 할 때였다. 하나의 길에서 서로 행진을 하다 보니 격해져 최루탄과 돌멩이가 공간을 넘나들었다. 전인권의 노래는 대학교 교정에서만 울려 퍼진 것은 아니다.


▲전인권은 대마초 등으로 수차례 교도소에서 지냈다.


그가 교도소에 머물 때 있었던 얘기 한 토막. 어둠이 내렸다. 재소자 중 한 명이 외쳤다. “인권이 형, 노래 하나 불러줘.” 전인권이 말했다. “알았어.”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아마 교도소에서 저녁에 노래를 부르는 것이 금지됐을 것이다. 그래도 교도관이 눈 감아줬지 않았을까. 그것도 가수가 전인권인데. 어둠이 내린 교도소에 울려 퍼진 전인권의 노래는 재소자들에게 큰 위안이 됐을 것이다. 박수가 공연료인데도 “알았어”하면서 노래를 불러 준 전인권의 마음 씀씀이도 고맙지 않은가.


▲노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고, 사람들은 자기를 위안하기 위해 노래를 짓기도 한다. 청록파의 한 사람인 박목월은 국문학과 교수 시절인 1950년대 초 여대생과 사랑에 빠져 종적을 감춘 일이 있다. 그가 간 곳은 제주도. 제주가 사랑의 피난처였던 셈이다.


나중에 이를 안 박목월의 아내가 제주에 와 두 사람에게 돈 봉투와 겨울 옷가지를 건넸다고 한다. 결국 시인은 아내에게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이때 지은 시가 바로 ‘이별의 노래’라고 한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의 미발표 시 166편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박목월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미발표 시를 공개했다. 이 시들은 1930년대에서 타계한 1970년대 사이에 쓰인 것이다. 미발표 시에는 시인의 사랑의 도피처였던 1950년대 제주를 소재로 한 시들도 있다고 한다. 시의 내용이 어떠한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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