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새바람 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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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움츠렸던 기운을 누그리며 봄이 기지개를 켠다. 길섶에 봄까치꽃과 별꽃이 다투듯 맵시 자랑이 한창이다. 금세 연둣빛 찬연한 들녘에 분홍 꽃물이 어우르고, 솜털 간질이는 훈풍이 불어올 것 같다. 해마다 봄 끝자락 즈음이면, 다시 이 계절을 무탈하게 맞을 수 있을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스치곤 했다. 올봄은 어떻게 맞이할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봄처럼 설렌다.

지난 가을 거두었던 봉숭아 꽃씨와 백일홍꽃 씨앗을 꺼내 볕에 널었다. 꽃씨를 곁에 두었던 그동안, 가슴은 겨우내 꽃밭이었다. 눈곱만한 씨앗이 품은 작은 우주는 내게도 희망이었으니까. 어디를 가나 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던 걸음도 돌려세울 만큼 꽃 바라기는, 가슴만은 늙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속내일까.

계절은 변함없이 돌아오지만, 매 순간 변해가는 내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길이다. 지난 시간은 원하지 않아도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실체도 없으면서 주체인 양 존재하는 게 버거웠다. 어쩌면 그게 나를 지탱하고 키운 오기가 됐을지 모른다. 비몽사몽 꿈결 같았던 순간이며, 돌부리에 넘어진 생채기 같은 해묵은 과거를 봄볕으로 내몰고 싶다. 몇 뼘으로 남았을지 모를 남은 날은, 나를 받들어 귀히 여기며 살고자 한다.

뜻대로만 살 수 없는 게 삶인가 한다. 뒤돌아보면 어긋나 삐걱거리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순환의 되풀이였다. 삶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변화로 다가오곤 했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터널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소실점 끄트머리로 빛은 왔다.

한때 층계를 힘들게 오를 때마다, 등짐처럼 얹힌 부질없는 일들이 그만큼 덜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줄기에 흐르던 땀과의 겨루기가 마지막 계단에 올라섰을 때, 의지와의 대결은 새털처럼 가볍게 고통을 뛰어넘었다.

실랑이하며 쓰던 글을 덮었다. 한 문장에 들어 앉힐 적절한 언어를 고르기 위한 작업은 고민을 거듭한 선택이다. 여러 단어를 나열해 놓고 망설임의 반복이다. 버리긴 아깝고 담자니 미흡하다. 주위에 널려 있는 소소한 것을 꿰면 다 구슬이요, 보배가 될 텐데. 감성의 눈이 어두워 줍지 못하는가 보다.

헝클어진 머릿속도 휴식이 필요하다. 하늘이 맑아 이끌리듯 집을 나섰다. 해안가 언덕에 마른 풀잎이 빗질한 듯 가지런히 누웠다. 드센 높새바람에도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하다. 바다로 뻗은 외길 끝쯤에 가마득한 수평선이 걸려있다. 성급히 내달리면 그대로 바닷물에 풍덩 빠질 것 같은 착시현상에 번번이 속는다. 숨차게 언덕에 올랐으나, 수평선은 더 멀리 물러나 있다. 가까이할 수 없는 목마름, 꿈은 어쩌면 이런 신기루와 닮은 것은 아닐지.

무릎 꿇어 자세를 낮추고 겸손해야 자연과 친해질 수 있다. 그만의 성정과 섬세한 몸짓을 읽어야 진실을 얻는다.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 섬광처럼 번득이는 한 줄기 언어로 내게 올 때의 떨림, 서둘러 자판기에 손을 얹곤 한다.

낯선 풍경은 새로운 교감의 시작이다. 포효하는 바다를 향해 두 팔 벌려 옹그렸던 가슴을 열었다. 해 묵은 응어리를 풀어야지, 새 봄맞이를 위해.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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