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관치유
수관치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 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따스한 봄이다. 나무뿌리가 물을 힘차게 빨아올린다. 가지 끝이 부풀어 올라 잎을 토해낸다. 여리고 여린 생명이 용솟음친다. 마치 봄볕을 마중 나온 햇병아리 같다. 총총걸음으로 어미를 뒤따르며 삐악댄다. 흐트러짐 없이 질서정연하다. 


실핏줄 같은 잔가지들도 뻗어 나간다. 헐벗은 가지에 새로운 잎도 활짝 열어젖힌다. 펼쳐진 잎에서 식량도 만든다. 그 사이로 꽃의 자리도 남겨놓는다. 하얀 꽃, 빨간 꽃, 노란 꽃. 저마다 꽃 자랑을 꿈꾼다. 그 유혹에 중매쟁이 벌과 나비들도 신바람 난다. 모두 모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은 나무의 수관이다. 식량을 생산하는 공장이며 중추 기관이다. 마치 우산처럼 둥그렇게 관을 쓴 모양이다. 그렇다고 모두 우람한 풍채를 가진 것은 아니다. 우듬지도 있고 왜소한 것도 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따라 각자의 풍채를 갖고 있다. 서열이 있음이다. 


그러함에도 수관은 요즘 새 단장으로 무척 바쁘다. 초기 준비가 올해의 풍년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넉넉한 식량 생산이다. 그래야 여름이 가고 가을을 넘어 추운 겨울에도 걱정 없이 튼튼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대를 잇는 씨앗도 많이 남길 수 있다. 


그래서 나무는 수관 관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가지들끼리 긴밀한 정보도 교환한다. 서로 겹치려 하면 조금 떨어지라고 소곤거린다. 아무리 비좁은 공간이라도 서로 사이좋게 나눠 쓴다. 조금씩 양보해 공간을 배려한다. 나뭇잎도 마찬가지다. 새로 나는 잎의 거리나 각도도 겹치지 않게 간격을 유지한다. 


가지가 자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심 가지가 수직으로 가장 높게 자란다. 그리고 다음 주변 가지들이 중심 가지를 둘러 가며 자란다. 중심 가지보다 더 크게 자라지도 않는다. 일정한 간격, 일정한 크기, 일정한 높이, 외각으로 넓혀가며 자란다. 


만약에 가지와 잎들 사이에 아무런 정보 교환이 없다면 수관의 가지와 잎들은 대혼란 격전장이 될 것이다. 각자 뻗고 싶은 대로, 자라고 싶은 대로 무질서 천지가 된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이런 혼란에서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 없다. 불필요한 에너지만 한없이 낭비하다 자멸한다. 


그래서 나무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화학적 신호전달 체계를 갖추고 있다. 소통을 긴밀하게 하는 화학적 신호 물질이다. 이는 세포끼리의 소통이다. 하나의 세포가 분화할 때 인접한 세포는 분화할 수도 있고 억제할 수도 있다. 이렇게 조절하는 물질이 옥신을 주축으로 하는 원형질연락사다.


이를 통해 수관은 수시로 소통하고 조절한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관도 잘 들여다보면 질서가 있다. 일정한 공간을 유지하면서 햇빛을 받는다. 이산화탄소도 무리 없이 교환된다. 잎의 증산작용도 막힘이 없다. 이는 수관이 건강함이며 나무의 건강함이다. 그리고 거대한 숲의 기반이다.


그 바탕에는 긴밀한 정보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빽빽한 공간에서도 더 안정된 질서가 유지된다. 무질서 혼란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 질서는 소통에서 비롯됨을 수관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수관을 우산 삼아 걸을 때 편안하다. 질서가 주는 안정감이다. 수관치유가 마음에 닿는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