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와 귀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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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 수필가

제주가 유채꽃으로 물들 때, 애월로 이소離巢했다.

혼자 맞는 주말 아침 식사는 딸이 보내 준 파우더로 대신한다. TV를 켠다.‘동물농장’ 프로에 채널을 고정한다. 유명 연예인 ‘이 정신’이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을 방송하고 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던 그가 길 위에 쓰러져 있던 새 한 마리를 발견한다. 몸에 온기가 남아 있는 새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알고 있는 상식을 총동원해 정성스레 보살피지만, 무엇이 잘못인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 몸에 날개가 있다는 것을 망각한 듯하다. 전문가한테 자문하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한다. 단지 이 ‘직박구리’라는 새는 무리 지어 다니는 새이니 수일 내로 짝이 찾아올 거라 일러준다.

그는 베란다 구석에 새집을 장만하고 직박구리를 새장에 넣었다. 어디에서 날아 올 짝을 기다리는 중이다. 십여 분이나 지났을까. 꼼짝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던 직박구리가 퍼드덕 날갯짓하더니 밖을 향해 울부짖고 있다. 밖에서도 “삐 이익.”하며 애타게 목 놓아 울고 있다. 나뭇가지에 앉아 ‘왜 그 곳에 있냐고,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왜 둥지를 떠난 거냐고.’하며 능청을 떨고 있다. 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부리로 콕콕 찍고 있다. 방송을 보는 내내 긴 탄식과 함께 내 어깨도 한 자나 쳐져 있다.

누구는 직장 때문에, 어떤 이는 세를 불려 나은 곳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이는 보는 관점이 맞지 않아 살던 둥지를 떠나 이소하기도 한다.

나는 삭막한 빌딩 숲에서 매일 반복되는 삶과 사투하고 있었다. 그러다 길을 잃고 있었기에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제주도에 내려올 즈음에 나는 마음이 많이 빈곤했다. 그 허전한 마음을 오름에 위로받고 싶었다. 첫해는 오름에 눈이 멀어 세월을 낚는 어부가 되고, 두 해가 지나갈 무렵에 오름을 품었다. 이름 모를 들꽃이 만발한 봄의 오름을 좋아했고, 곶자왈에서 한여름을 보냈다. 들판에 나락이 일렬종대로 누웠다가 파도치듯 올라갈 때면, 바람 박자를 타며 꿈틀거리는 황룡들을 보러 오름에 오른다. 덩달아 음표를 부쳐 노래하고 춤추다 보면 어느새 겨울 문턱에 서 있었다. 실타래처럼 늘어진 백설이 나목 위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이 보단 더 좋을 수 없노라고, 잘살고 있노라고 스스로를 부추기곤 했다. 하지만, 좀처럼 매워지지 않는 틈으로 싸늘한 골바람에 여전히 옷깃을 여미곤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직박구리 두 마리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아침 인사를 건네고 있다. ‘지난밤에 별일 없었니?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네가 있던 곳으로 귀소歸巢하라고.’ 잘 지내고 있는지 하루가 멀다고 하며 찾아왔다. 그가 새장의 문을 열자, 새장 안에 직박구리가 안정을 찾은 듯, 퍼덕이며 더 넓은 창공을 향해 날았다. 비상하는 두 마리 새의 날개가 솜털보다 가벼워 보였다.

남편도 그랬다. 제주도에 나를 혼자 보내고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잦은 톡과 안부를 보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면 사유함도 깊어질 거로 생각했다. 그 덫에 갇혀 버려 지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수히 삐걱거렸던 날이 퇴색되고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 아픔도 녹슬었는지 이젠 무디다. 그리운 이들을 두고 나는 무엇을 하는 걸까. 이소할 때 따스했던 봄날의 볕이 바래만 가고 해도 저물어 가고 있는데 말이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이소와 귀소는 한 몸이 아니었던가. 이성과 감정을 얼기설기 엮어 놓곤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애초에 둥지는 없었다. 나는 유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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