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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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일 카다레 '광기의 풍토'
알바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단편집 '광기의 풍토'(문학동네 펴냄)가 출간됐다.

2004년에 쓰인 표제작 '광기의 풍토'와 1984년작 '거만한 여자', 1962년작 '술의 나날' 등 40년에 걸쳐 쓰인 이 작품집 속 세 편의 소설에는 전후(戰後) 공산주의 체제 초기 알바니아의 초상이라는 주제가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다.

시대의 광기 속에 휘말린 인간 군상들의 삶이 결코 무겁지 않은 필치로 그려진다.

'광기의 풍토'는 어린 '나'의 시선으로 가족 간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보여준다.

외할아버지 바바조는 알바니아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구시대 사람으로, '나'에게는 신비에 둘러싸인 복잡한 인물이다.

바바조의 아들, 딸들을 비롯해 바바조를 둘러싼 사람들은 상반되는 신념으로 팽팽히 맞서고, 이모에게 '공산당원증'을 들킨 막내 외삼촌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혼란의 시대 속에 나타난 이러한 복잡한 갈등은 순진한 어린아이의 해석을 거쳐 단순하고 우스꽝스럽게까지 보인다.

"'당이 그렇게 강하다면 왜 숨어 지내는 건데?' 우리는 이 물음의 해답을 찾기 위해 잠시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중략) 그러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투명 인간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그토록 겁을 먹는 건 그냥 그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결론지었고,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29쪽)
'거만한 여자'는 공산당의 집권으로 하루 아침에 권세를 잃어버린 후 딸을 공산당 간부와 결혼시켜 재기를 꾀하는 옛 고위관리의 부인과, 몰락한 고위 관리의 딸과 결혼했다는 약점을 딛고 출세하려는 사위의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와 함께 무기력한 두 대학생이 한 시인의 소실된 시 원본을 찾아 N이라는 도시로 떠난 여행을 그린 '술의 나날'은 발표 당시 사회주의적 현실과 배치되는 '데카당트(퇴폐적)'한 글이라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기도 했다.

이창실 옮김. 232쪽. 1만원.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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