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故정몽헌회장, 정상회담 먼저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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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상회담 전 현금지원 요청했지만 거절"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박지원 의원이 11일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성사 당시의 `막전막후'를 소개했다.

무소속인 박 의원은 이날 `서울대 6.15 연석회의' 초청 특강에 앞서 배포한 `6.15 정상회담은 어떻게 이뤄졌나'라는 제목의 원고에서 "2000년 초 당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정 회장이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하고, 현대가 협력할 수 있다고 했다"며 뒷얘기를 풀어나갔다.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은 DJ가 관심을 표명하자 박 의원은 정 회장에게 전화해 가능성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정 회장은 이후 3월 싱가포르에서 남측 특사였던 박 의원과 송호경 북측특사간 비밀회담이 열렸을 당시에도 회담 장소 등에 대한 양측간 연락 채널 역할을 했다고 박 의원은 설명했다.

박 의원은 또 "3월17일 상하이에서 열린 송 특사와의 1차 예비회담에서 북측은 우리 정부에게 현금지원(15억 달러)을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예산절차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단호히 거절했다"면서 "당시 정몽헌 회장을 제 방으로 불러 북측의 무리한 요구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그는 현금지원 불가 입장으로 상하이 회담과 3월22일 베이징 2차 예비회담이 결렬되는 우여곡절 끝에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한 양 특사간 `4.8 합의'가 이뤄졌다고 소개했다.

박 의원은 고 김일석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문제로 정상회담이 막판까지 결렬 위기에 처했던 사실도 상세히 공개했다.

또한 방북 직전 "참배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는 북측의 통보에도 불구, "예정대로 출발하자"는 DJ의 지시로 일단 전용기를 띄웠지만 평양 도착 후 송 특사가 "참배를 거부하면 회담도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막판까지 진땀을 뺐다고 박 의원은 전했다.

이와함께 그는 "한광옥 비서실장과 제가 대신 참배하고 돌아가 구속 당하겠다"고까지 배수의 진을 쳤지만 기싸움을 계속하다 회담 당일인 6월14일 오전에서야 김정일 위원장이 `참배는 안해도 된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극적으로 문제가 풀렸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방북 기간 순안공항 도착 직후 DJ와 김정일 위원장이 포옹했을 때, 참배 문제가 풀렸을 때, 6.15 공동선언문이 작성됐을 때 등 4차례에 걸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6월15일 환송 오찬에서 김 위원장은 박 의원의 노래에 앙코르를 신청했고, 박 의원이 "국회의원 한번하고 낙선했는데 여기서 `재창'을 받았다. 서울에 답방해 재선하도록 해달라"고 농을 던지자 김 위원장은 "서울에 꼭 가서 3선, 4선 하도록 돕겠다"고 응수했다고 소개했다.

박 의원은 대북송금 특검과 관련, "노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비교적 성공했다고 평가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DJ와의 차별화를 위해 옹졸한 정치적 계산을 했으며 DJ에게 정치적 타격을 줘야겠다는 음모에서 정치자금 관계를 조작했다는 믿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당시 노 전 대통령측으로부터 이회창 후보 대선자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안기부 자금 등에 대한 동시 특검을 통해 `물타기'로 문제를 풀자는 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북송금 특검만 없었다면 6.15 합의사항이 착착 진행됐을 것이고 노 전 대통령 취임 초에 2차 정상회담이 열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밖에 "이명박 정부도 ABKR(Anything But 김대중&노무현) 정책을 통해 잘못된 전철을 되밟는 조짐이 시작되고 있다"면서 "다만 최근 대북정책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어 대북정책 궤도가 조만간 수정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기대감을 표출했다.(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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