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들의 보편주의' 허구성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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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 '유럽적 보편주의' 출간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웠고 그 여러 가지 이유들은 '사담 후세인=악'이며 미국은 이 '악'을 제거하기 위해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세계체제론'을 주창한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유럽적 보편주의: 권력의 레토릭'(창비 펴냄)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악'(惡)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 '악'을 물리치기 위해 내세우는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가치가 다른 나라에 무력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정말 의심할 바 없는 '보편적인' 것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그는 "범유럽세계 지도자들과 주류 미디어, 기성 지식인들의 레토릭(rhetoric)은 자기네 정책을 옹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명분으로서 보편주의에 호소하는 언사들로 가득 차 있으며, '타자들' 곧 비유럽세계의 국가 및 더 가난하고 '발전이 덜 된' 국가의 국민과 관련된 정책에 말할 때 특히 그렇다"고 지적한다.

이는 16세기 이후 근대 세계체제의 역사 내내 강자들의 기본적인 레토릭이었다는 게 월러스틴의 시각이다. 그는 강자들이 말하는 보편주의가 편파적이고 왜곡된 보편주의였다며 이를 '유럽적 보편주의'라고 이름붙인다.

유럽적 보편주의는 16세기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경영제도를 놓고 벌어졌던 '라스 카사스-세풀베다' 논쟁에서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세풀베다는 스페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지배해야 하는 이유로 원주민들이 야만스러운 미개인들로 우상숭배와 불경한 인신공양관습에 대한 교정책이 필요하고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저질러왔던 악행을 막아야 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월러스틴은 세풀베다의 주장에 대해 "'문명화된' 지역이 '비문명화된' 지역에 대한 이후의 모든 '개입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기본적인 것들"(22~23쪽)이라며 16세기 '야만'을 악으로 규정했던 논리가 20세기에는 '독재정치'에서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논리로 전환됐을 뿐이라고 역설한다.

월러스틴은 이어 개입의 논리는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해야만 그들이 주장하는 명백한 악을 박멸할 수 있다는 것으로, 개입자 자신의 사회 뿐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부터도 충분한 승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주장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세계의 지배자들이 '개입'의 근거로 내세우는 논리는 그들의 지배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유럽적 보편주의'일 뿐이며 여기에 맞설 진정한 '보편주의', 즉 그가 '보편적 보편주의'라고 부르는 보편주의가 필요하다고 월러스틴은 주장한다.

그는 이 두 보편주의의 싸움이 앞으로 20~50년간 지속할 현 세계의 핵심적 이데올로기 투쟁이며 그 결과가 향후 세계 체제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면서 보편적 보편주의의 승리를 위해 보편적 보편주의들의 네트워크 형성과 끊임없는 역사적 분석을 주문한다.

"우리 모두는 그 이행의 시기에 세계 체제를 분석하려고 노력하고 가능한 대안들과 그 대안들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하는 윤리적 선택을 분명히 하면서 종국에는 우리가 선택하고자 하는 정치적 진로들의 가능성을 조명하는 일들을 끝까지 지속해야 할 것이다"(146쪽)
2004년 11월 월러스틴이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서 세계에 관한 시각을 주제로 석학강연을 했던 세 개의 연속강의 내용을 보완해 책으로 펴냈다.

김재오 옮김. 172쪽. 1만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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