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들이 털어놓은 '히틀러 최후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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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북' 출간
1945년 4월30일 아돌프 히틀러는 제국 총리공관의 지하 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히틀러의 자살 소식은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에게도 전해졌지만 그는 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서방의 연합군이 히틀러를 비밀리에 도주시켰을 것이며 히틀러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으로 생각한 그는 이후 KGB로 이름을 바꾸는 내정인민위원회(NKVD)에 '히틀러 최후의 순간'을 재구성할 것을 명령했다.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NKVD 요원들은 이후 입수할 수 있는 모든 문서를 추적, 발굴했으며 수용소를 뒤져 색출해낸 히틀러의 조력자들을 심문해 1933~1945년 시기 히틀러의 삶을 재구성한 보고서 '히틀러 북'을 완성했다.

413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1949년 12월29일 스탈린에게 보고됐으며 스탈린은 '히틀러북'을 자신의 개인 문서를 저장하는 '총서기 기록보관서'에 보관했다. 이후 2003년 러시아 문서기록보관서에서 이 기록을 발견한 독일의 역사학자 마티아스 울은 역사학자 헨릭 에벨레와 함께 스탈린만이 알고 있었던 '히틀러 북'(루비박스 펴냄)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책은 대부분 오랫동안 히틀러의 최측근으로 지냈던 하인츠 링게와 오토 귄셰라는 두 남자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링게는 1935년부터 총통의 호위사령부에 배속됐으며 이후 히틀러의 개인업무를 총괄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역시 1936년 호위사령부에 배치됐던 귄셰는 히틀러의 개인부관으로 일하다 1945년 5월 소비에트군의 포로가 됐던 인물.

히틀러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이 있지만 이 책이 그 기록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일에 대해 자세하게 정황을 묘사했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링게와 귄셰는 서로 독방에 수감돼서 입을 맞출 수 없는 상황에서 진술했고 부정확한 진술을 했을 경우 고문을 당해야 했다. 4년간 이런 과정을 거쳐 재구성된 히틀러의 삶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생생하다.

예를 들어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한 뒤 히틀러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독일 군대가 스탈린그라드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은 히틀러에게 엄청난 타격을 줬다. 개인 주치의 모렐이 하루 걸러 아침식사 후 투여한 각성제가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히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신경성 위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는 하루에도 몇 시간 씩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중략) 그는 화장실의 물탱크, 비누, 면도크림, 치약 등 모든 곳에 독이 들어있다고 의심했으며 그 모든 것을 철저하게 검사하라고 명령했다. 그의 식사를 요리하는데 사용되는 물 역시 검사를 거쳐야 했다. 히틀러는 손톱을 물어뜯었으며 피가 날 때까지 귀와 목을 긁어댔다"(154쪽)
훗날 많은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히틀러 최후의 순간도 실제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돼 있다.

"4시를 몇 분 앞둔 시각 벙커로 돌아온 귄셰는 응접실로 들어갔다. 사격장에서 맡을 수 있는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히틀러는 소파 왼쪽에 앉아있었으며 그의 옆에는 에바 브라운의 시신이 놓여있었다. 히틀러의 오른쪽 관자놀이에는 1페니히 동전 크기의 총알 구멍이 나 있었으며 그의 뺨을 타고 두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벽과 소파에는 여기저기 피가 튀어 있었다. 히틀러의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무릎에 올려져 있었다. 왼손은 옆구리에 붙이고 있었다. 히틀러의 오른발 옆에 7.65mm 발터 권총이 놓여 있었으며 왼쪽 발 옆에는 같은 제조회사의 6.35mm 권총이 놓여 있었다"(399쪽)
윤종상 옮김. 476쪽. 2만4천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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